시선을 붙잡는 이미지의 파편들, 입맛을 사로잡는 특별한 밑반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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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식도락]⑦송은아트스페이스 미술대상전, 레스토랑 셰프K&R의 브로콜리무침

아교 입힌 광목천 캔버스에 동양화 물감으로 그린 이진주 작가의 ‘열림과 닫힘’(왼쪽 사진)과 셰프K&R의 브로콜리마늘오일무침.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아교 입힌 광목천 캔버스에 동양화 물감으로 그린 이진주 작가의 ‘열림과 닫힘’(왼쪽 사진)과 셰프K&R의 브로콜리마늘오일무침.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처음 식탁에 놓인 건 브로콜리무침이 아니었다. 서울 강남구 송은아트스페이스 1층의 레스토랑 ‘셰프K&R’(02-3448-4466). 선후배 동업자 김영택(45) 류진근 셰프(42)는 불갈비 샐러드와 농어 튀김을 대표 메뉴로 권했다. 샐러드는 눅눅했고 튀김은 당혹스러웠다.

난감한 속내를 감추며 기본 메뉴로 나온 브로콜리를 한입 물었다. 윤기가 도는데 과자처럼 바삭하다. 올리브기름과 후추는 혀와 눈에 바로 잡히지만 핵심은 그게 아니다. 후춧가루 사이사이 숨어 앉아 눈에 잘 띄지 않는 거뭇거뭇 알갱이. 잘게 다져 기름에 졸인 마늘 부스러기다.

재료는 다진 마늘 250g과 올리브기름 1L가 전부다. 냄비에 담고 약한 불로 40∼50분 끓인다. 끓이는 내내 곁에 붙어 서서 끊임없이 저어야 한다. 어느 한순간 손에 전해지는 마늘 알갱이의 느낌이 달라진다. 노릇노릇 자작자작. 즉시 불을 끄고 그릇에 담아내 식힌다. 미리 데쳐 얼음물에 식힌 뒤 물기를 쪽 빼둔 브로콜리에 이 마늘오일을 부어 무쳐 낸다. 설명은 쉽다. 적잖은 손님이 조리법을 묻고 받아 적어 갔다. 비슷하게 맛을 내는 건 당연히 만만찮다. 여럿이 둘러앉아 살짝 취하도록 술 마시기 좋은 이 레스토랑을 특별하게 만드는 건 푸짐한 제철요리보다 기본기 충실한 밑반찬이다.

2∼4층 전시공간에서는 내년 1월 31일까지 제14회 송은미술대상전이 열린다. 우수상 수상 작가 4명의 합동 전시를 연 뒤 대상 1명을 선정한다. 올해의 주인공은 도수진 이진주 전소정 조소희 작가다. 저마다 지향하는 바가 판이해 설치, 회화, 영상 등 전시 차림새가 다채롭고 푸짐하다.

입구 옆에 놓인 작가별 예전 전시 도록을 먼저 들춰 훑었다. 전시실에서 발길을 잡아세운 건 도록에서 튀어 보이지 않던 이진주 씨의 회화다. 상반신 벗은 여체를 살짝 민망하게 비틀면서 말라죽은 나무둥치, 팬티스타킹을 벗다 만 누군가의 다리, 전기드릴, 폐타이어, 해진 모포를 뒤죽박죽 늘어놓았다. 주제도 표현도, 아름답다기보다 불쾌하다. 하지만 흥미롭다.

가로 2.5m, 세로 1m가 넘는 그림이 여럿 걸린 전시실 한구석에 손바닥만 한 습작을 함께 걸었다. 이 씨는 관심 가는 대상을 조그맣게 여러 번 그린 뒤 수집한 이미지 파편을 한데 끌어 모아 커다란 구성을 짜낸다. 전하려는 바는 전체의 하나일 수도, 조각난 제각각일 수도 있다. 속내를 굳이 캐물어 확인하고 싶지는 않지만 시선을 붙든다.

꼬마 때 아버지 서재를 뒤지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그린 ‘세속적 쾌락의 정원’을 처음 본 기억이 떠올랐다. 섬뜩한 것이 동시에 매혹적일 수 있음을 알려준 그림이다. 혐오스러운 그 이미지를 어째서 두근두근 거듭 찾아내 뜯어봤을까. 음식이든 그림이든, 전하려 하는 바에 집중하도록 돕는 건 밑동의 자잘한 기본기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셰프K&R#브로콜리무침#송은미술대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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