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가득 메운 처연한 눈빛 연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6일 03시 00분


이주여성 소재 영화 ‘안녕, 투이’

영화 ‘안녕, 투이’에서 죽은 남편을 떠나보내는 베트남 며느리 투이(닌영란응옥·오른쪽)와 시아버지(명계남). 인디플러그 제공
영화 ‘안녕, 투이’에서 죽은 남편을 떠나보내는 베트남 며느리 투이(닌영란응옥·오른쪽)와 시아버지(명계남). 인디플러그 제공
“아무도 내 말 들어주지 않아요. 저는 어떻게 해요….”

경남의 바닷가 마을. 베트남에서 시집온 투이(닌영란응옥)는 자상한 시아버지(명계남)와 치매 걸린 시어머니(김미경)를 모시고 산다. 그러던 어느 날, 마실 나간 남편이 오토바이 운전 도중 추락사했다는 비보가 들려온다. 투이는 자전거도 못 타는 남편이 오토바이를 몰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여기저기 도움을 청해보는데 어쩐 일인지 경찰과 마을사람들은 냉담하기만 하다.

‘안녕, 투이’(감독 김재한)는 한국에서 베트남 배우가 주연을 맡은 첫 번째 극영화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입소문을 탄 이 영화는 하와이국제영화제와 두바이국제영화제 등 여러 곳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홍상수 감독도 “농촌사회의 문제점인 국제결혼이란 소재를 꾸미지 않고 잘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작품이 설득력을 지니게 된 데는 여 배우의 힘이 크다. 배우 및 가수 출신으로 현지 오디션을 통해 투이 역에 낙점됐는데, 한국말은 더듬거리고(원래 그렇잖나) 베트남어는 생경해 대사 소화력은 가늠이 안 된다. 하지만 특유의 처연함이 가득한 눈빛만으로 스크린이 꽉 찬다. 한국에서 베트남 여성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딱 저런 표정으로 어깨가 처져 있겠구나 싶다.

도시와는 또 다른, 시골의 ‘이면’을 적확하게 짚어낸 점도 매력적이다. 2008년 문학수첩작가상을 받았던 주영선 작가의 소설 ‘아웃’이 떠오른다. 촌은 언제나 정감 넘치는 곳으로 그려지지만 농촌(혹은 어촌)은 진입 장벽이 높은 ‘갇힌 사회’인 경우가 많다. 투이뿐만 아니라 전근 온 경찰 상호(차승호)도 이 벽에 부딪힐 정도니까. 투이의 설움은 소수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18세 이상 관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안녕 투이#베트남#농촌#갇힌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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