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양섭 전문기자의 바둑人]<23>김지석 “바둑 그만두고 싶을 때가…”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7일 0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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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배 우승뒤 중국 시안의 한 호텔에서 김지석 9단과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입단 뒤 세계대회에서 우승하겠다는 목표를 이뤄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기원 제공
삼성화재배 우승뒤 중국 시안의 한 호텔에서 김지석 9단과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입단 뒤 세계대회에서 우승하겠다는 목표를 이뤄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기원 제공
10일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해 처음으로 세계대회 타이틀 홀더가 된 김지석 9단(25). 당일 저녁 축하 인사와 함께 수많은 술잔도 기분 좋게 받았다. 다음 날 ”꼭 보고 싶었다“던 진시황의 병마용을 둘러봤다. 그리고 12일, 귀국하는 날 오전에 시안의 한 호텔 로비에서 그를 만났다. 먼저 ”지금의 기분은 어떤지“부터 물었다.

김지석은 ”국내 대회에서 바둑 한판을 이겨도 기쁘다. 더구나 세계대회는 입단 이후 나의 목표였다. 여전히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던 날 부인 박민정 씨(28)와 부모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았다. 동료 기사들로부터도 많은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요즘 바둑이 늘었다고 한다. 목진석 9단은 ”힘으로만 밀어붙이던 바둑에서 길게 가는 바둑도 잘 둔다. 전성기 초입에 들어온 것 같다“고 말했다. 본인의 생각은….

”예전에는 바둑 둘 때 초조했고, 그러다보니 서둘렀다. 중국 무협지나 무협영화에서 보면 검객들이 싸울 때 먼저 움직이면 지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바둑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특히 시간이 긴 바둑에서는 상대가 완벽한 수읽기를 할 것 같고 실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때문에 내가 지레 초조해져 먼저 움직이다 판을 그르친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나를 믿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느긋하게 생각하고, 기다릴 수 있게 됐다.“

―시합 전에 바둑공부는 어떻게 하나.

”상대의 기보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시합 날짜가 가까워지면 일부러 상대의 기보를 보지 않는다. 상대를 의식하지 않기 위해서다.“

―삼성화재배 결승전 대국 전날 잠을 설쳤다고 들었다.

”입단 초에는 대국 전날 잠을 설친 적이 있었지만 이후 그런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벽하게 둬야한다는 생각에 긴장을 많이 한 것 같다. 그러다 시합 당일 지면 어쩔 수 없고, 평소대로 둬보자고 생각했는데,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김지석은 바둑계 ‘엄친아’로 유명하다. 집안이 좋고 예의가 바른데다 생기기도 잘생겼다. 아버지가 김호성 전남대 공대 교수(55)이고 어머니는 약사다.

―바둑은 아버지에게서 배웠나.

”아버지가 바둑을 좋아하셨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5세 때부터 바둑을 배웠다고 한다. 두 살 터울의 형과 함께. 형은 2년 정도 배우다 그만뒀다. 아버지와는 6점 정도 바둑일 것 같다. 프로가 되고서도 아버지가 백을 잡고 두셨다. 대신 흑을 쥔 내가 수십 집을 덤을 주는 식으로(웃음). 최근엔 아버지와 둔 기억이 없다.“

김지석 9단은 처음으로 세계 타이틀 홀더가 됐다. 그는 “그전에는 조금했는데 요즘은 기다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기원 제공
김지석 9단은 처음으로 세계 타이틀 홀더가 됐다. 그는 “그전에는 조금했는데 요즘은 기다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기원 제공
김지석은 서울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3학년부터 5학년까지는 광주에서 학교를 다녔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그는 광주에서 바둑신동으로 유명했다. 광주에서 김정렬 바둑교실에서 바둑을 배웠다(김 원장은 이후 서울로 올라와 왕십리에 골든벨바둑도장을 차려 수많은 프로들을 배출했다. 최근엔 이세돌 바둑도장과 합쳐 이세돌 바둑연구소를 만들었다). 광주의 터줏대감 오규철 프로에게도 배웠다. 이후 조훈현 9단의 두 번째 내제자로 들어가는 듯 했으나 성사되지는 않았다.

이후 그는 여러 프로들에게서 바둑을 배웠다. 하지만 주변에 또래가 없어 나이 어린 그에게는 힘든 때였다. 그는 당시를 ”바둑이 지겹고 재미없을 때였다. 그만두고 싶었는데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당시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남편을 광주에 두고 서울로 올라왔다. 어머니는 한국기원을 비롯해 바둑도장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동분서주했다. 지금은 분당에서 약국을 운영 중이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권갑용 바둑도장에서 본격적으로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입단을 준비하던 백홍석 이영구 진시영 강동윤 등과 바둑을 두며 실력을 키웠다.

―2003년(중3)에 입단했다. 빠른 편이었나. 프로생활은 어땠나.

”요즘은 입단이 다소 늦어지고 있다. 당시에는 내 입단이 빠른 편은 아니었다. 느리지 않은 정도였다고 할까. 입단하고 나서 약간의 자유를 찾은 느낌이어서 좋았다. 이후 진짜 프로의 세계를 몸으로 느꼈다. ‘무명’ 프로와 바둑을 뒀는데도 바둑을 꾸리기가 어려웠을 정도로 아마추어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입단 6년 만인 2009년에 처음으로 타이틀을 따냈다. 물가정보배에서 이창호 9단을 3-0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것. 그러고는 2013년 GS칼텍스배를 우승한데 이어 이듬해 2연패했고, 올레배에서도 우승했다.

―삼성화재배를 포함해 지금까지 5차례 우승이 모두 영봉승이다.

”영봉승도 있지만 영봉패도 있다. 2009년 박정환 9단에게 천원전에서 0-3으로 졌고, 2012년 물가정보배에서도 안성준에게 0-2로 졌다. 특히 2009년 박정환에게 진 것은 아팠다. 그해 다승상 승률왕 연승상을 받아 자신감에 차 있을 때였다. 일년 내내 좋다가 막판에 어린 후배에게 졌다. 주변에서 나를 어떻게 볼지, 자격지심이 들었다. 힘들었다. 한 달간 집에서 나오지 않고 지냈다. 안성준에게 물가정보배에서 질 때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당시에 주로 선배들과 경쟁했는데 후배에게 져 그러지 않았나 싶다.“

김지석은 예의가 바르다. 한국기원 직원들이나 바둑TV PD 등 바둑계 안팎에서 인사성이 밝다는 평을 듣고 있다. 부모에게서 교육을 받아서 그런 것 같다.

“아버지가 엄하셨다. 사람을 대할 땐 늘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 존댓말을 썼다. 처음엔 모든 사람들이 부모에게 존댓말을 쓰는 줄 알았다. 어려서 어머니가 ‘물건은 쓰면 쓸수록 닳지만 머리는 쓰면 쓸수록 좋아진다’고 말씀하신 게 지금의 나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감사한다.“

김지석은 2012년 말 서울대 약학대학원을 나온 박민정 씨와 결혼했다. 당시 바둑계에서는 ‘약사인 어머니가 약대 대학원을 나온 며느리 자리를 아들에게 소개시켜준 게 아니냐’는 말도 나돌았다. 이에 대해 물었다.

”그렇지 않다. 와이프의 친구가 먼저 팬으로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고 들었다. 그분이 친구인 와이프에게 부탁을 했다. 어려서 바둑을 배운 와이프는 입단한 친구 송태곤을 통해 다리를 놓았고, 넷이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분은 사정이 생겨 나오지 못하고 셋이서 저녁을 같이 했다. 이후 지금의 아내와 2년 동안 사귀다 결혼하게 됐다.“

그의 아내의 바둑실력은 5점 치수 정도. 김지석은 ”장인어른이 더 세다. 간혹 명절 때 바둑을 둘 때가 있는데 4점 잡기가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장인어른이 딸을 데리고 어린이 바둑대회에 나왔을 때 나를 보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제 곧 아기도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지석 9단이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있는 모습. 한국기원 제공
김지석 9단이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한 뒤 트로피를 들고 있는 모습. 한국기원 제공
김지석에게 바둑 스승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어렸을 때 광주에서 4, 5년 배운 김정렬 원장이다. 커서 다른 도장에 있을 때도 왕십리의 골든벨 도장에 가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고 말했다. 그는 친하게 지내는 프로로는 바둑 상비군인 진시영 김세동 강동윤 안성준 이지현 등을 꼽았다.

―삼성화재배 우승한 날 보니 술이 상당히 세던데. 술을 좋아하는 편인가.

”그렇지 않다. 안 좋아한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저께처럼 마실 때가 1년에 한번 정도 될까, 보통은 한 달에 1, 2번 가볍게 맥주를 마시는 정도다.“

그는 운동을 좋아한다. 스무 살이 넘어 유도를 배웠다. 2년 정도 해 몸이 탄탄하다. 공인 1단의 실력. 요즘에는 집(서울 황학동) 주변 배드민턴 클럽에 다니고 있다. 오후 5시까지는 한국기원에서 바둑 상비군 국가대표 훈련을 하고는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별일 없으면 오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배드민턴을 친다. 그의 취미는 노래 듣기다. 노래는 잘하지 못해 노래방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여행도 좋아한다. 결혼 뒤 짬을 내 아내와 유럽과 미국, 그리고 중국 윈난 성을 다녀왔다. 시간이 없어 거의 1주일짜리였다. 음식은 가리지 않는 편. 삼성화재배 1승을 한 뒤 중국식 샤부샤부인 훠궈 집에서 돼지 뇌를 시켜 먹었을 정도.

끝으로 박정환 9단에 대해 물어봤다. 박정환은 랭킹 1위이고, 그는 2위다. 내년 2월에 LG배에서 우승컵을 놓고 겨뤄야 한다. ”정환이 때문에 많이 늘었다. 단체전 등 같이 외국에 나갈 때 함께 공부하기도 했다. 정환이도 나 때문에 늘지 않았을까요(웃음).“

”그럼 이세돌 9단은 어떤가“라고 묻자 ”세돌이 형의 승부욕과 호흡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양섭 전문기자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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