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대문호 이규보(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담긴 한시 ‘차운공공상인 증박소년오십운(次韻空空上人 贈朴少年五十韻)’의 한 토막이다. 여기서 상인은 고려 후기 고승인 유가대사(瑜伽大師) 경조(景照)를 가리킨다. 그런데 유가대사를 말 그대로 미치게 만든 상대는 바로 박씨 성을 가진 소년이었다. 세속의 욕망을 끊어버린 고승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강문종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전통시대 동성애 연구’ 논문에서 고려 조선시대 문학과 역사에 담긴 동성애 코드를 짚었다. 강 선임연구원은 유가대사와 박씨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이규보의 한시를 고려시대의 동성애 문화를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문학작품으로 꼽았다.
‘이 소년은 총명한 천성에다 / 해박한 학식까지 마냥 간직해 / 마치 봄철의 윤택한 숲 같고 / 또 둥근 보름달과도 같네 / 침실에서 이불을 함께하니 정이 진실로 도탑다 / 궁중의 대식(對食)을 본받은들 뭐가 해로우랴.’
이 시에서 대사는 소년의 지성에 빠져 대식(동성애)을 하는 관계에 이르렀다. 다른 구절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 시를 주고받는 장면도 나온다. 마치 프랑스 시인 폴 베를렌과 아르투르 랭보의 관계를 보는 듯하다.
그런데 주목해 볼 만한 대목은 마지막 구절 ‘궁중의 대식을 본받은들 뭐가 해로우랴’다. 이규보와 같은 대가가 대식과 관련한 시를 대표문집에 넣을 만큼 고려시대는 동성애에 대해 개방적이었다는 점이다.
반면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의 가르침에 따라 동성애를 극히 혐오했다. 예컨대 세종대왕은 동성애를 ‘극추(極醜·지극히 추한 일)’라고 부르며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며느리였던 세자빈 봉씨가 궁녀인 소쌍과 동침한 사실이 드러나자 즉각 폐위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에도 동성애를 그린 문학적 표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구한말 유학자이자 소설가인 육용정(1842∼1917)이 쓴 작품 ‘이성선전(李聖先傳)’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찍이 이웃의 한 소년과 더불어 기뻐하는 애정이 자못 깊어 그와 더불어 서로 약속해 말하기를 “그대가 혼인하기 전까지는 한결같이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이성선은 아내가 죽고 세상사에 대한 염증을 느끼다 이웃집 소년을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애정이 식은 소년이 다른 남자와 동침한 사실을 알자 분노한 이성선은 칼을 휘두른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소년이 신의를 저버렸기 때문에 이성선이 칼을 뽑았다”며 주인공의 행위를 의리로 정당화하고 있다. 바로 뒷부분에는 이성선이 농사를 짓지 않음에도 가뭄에 시달리는 마을사람들을 위해 사비를 털어 기우제를 지냈다는 이야기를 넣어 그의 의협심을 강조한다.
강 선임연구원은 “전통시대 궁중에서 벌어진 여성 동성애에 대해 왕이 직접 징계를 내린 반면 남성 동성애는 문학에서 의리로 포장되기도 했다”며 “동성애조차 남성 중심주의의 한 단면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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