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식도락]⑧
63스카이아트 ‘신데렐라’전 & 워킹온더클라우드 ‘문어 애호박 카르파초’
TV드라마의 무한반복 신데렐라 이야기 변주를 마뜩잖아 하는 이에게 질문. 눈 내리는 밤 어렵게 용기 낸 누군가의 유리구두 고백에 마음 흔들리지 않을 자신 있는지. 올겨울에도 숱한 청춘들이 신데렐라 스토리의 자기화를 꿈꾼다.
서울 영등포구 63빌딩 59층 양식 레스토랑 ‘워킹온더클라우드’(02-789-5906)는 신데렐라와 왕자님 이벤트에 최적인 공간이다. 종업원 친절도가 복불복으로 달라지는 부담이 있지만 서울에선 대안을 찾기 힘든 매력적인 경관의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이번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 창가 자리 예약은 이미 꽉 찼다.
스페셜 메뉴는 애호박 편채로 하단을 감싼 국내산 문어 카르파초(Carpaccio·저민 날고기 또는 해산물 전채요리)다. 문어가 제철인 11∼2월에만 낸다. 다리만 잘라내 20분간 압력솥에 익힌 뒤 포를 뜨듯 세로로 자르고, 데쳐서 얇게 썬 애호박 위에 가지런히 펴 올린다. 요리 이름에 나온 재료의 조리는 이것으로 마쳤지만 완성이 아니다.
바질오일에 타피오카말토덱스트린이라는 전분을 버무려 만든 뽀득뽀득한 파우더로 소복소복 쌓인 눈 이미지를 꾸며 문어 위에 얹는다. 그리고 물, 바질오일, 밀가루를 10 대 10 대 1로 섞은 묽은 반죽에 치즈가루와 오징어먹물을 첨가한 뒤 팬에 얇게 발라 크래커처럼 구워 파우더 눈 더미 위에 세워 꽂는다. 신데렐라 호박마차의 바퀴 이미지에 억지로 끼워 맞춘 애매한 장식처럼 보이지만 입 안에 넣으면 생각이 바뀐다. 문어의 쫄깃함과 애호박의 부드러운 감칠맛에 바삭한 식감과 짭조름한 풍미를 더했다.
한 층 위 63스카이아트 미술관에서는 내년 3월 22일까지 ‘신데렐라’전이 열린다. 호박, 구두, 시계, 생쥐 등 신데렐라 이야기 속 오브제와 연결될 만한 국내외 작가 29명의 작품 53점을 모은 기획전이다. 동화 속에서 착한 마녀의 수완 덕에 리무진 마차로 변하는 호박 덩어리를 자신의 아이콘으로 삼은 일본 작가 구사마 야요이의 ‘땡땡이’ 호박 그림도 당연히 포함됐다. 나라 요시토모의 ‘The Puff Marshies Mini’는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맹랑한 눈매의 단발머리 소녀 머리를 호박 덩이처럼 표현한 유리 조각품이다.
임안나 작가의 ‘Hello Kusama’ 연작은 즐겨 사용하는 장난감 군인 인형을 호박 덩이 위에 배치하고 촬영해 프린트한 오마주 작품이다. 호박 위에 올라 전쟁터 고지를 점령한 듯 깃발을 꽂거나, 마주 놓인 두 호박 덩이 위에서 대치하는 장난감의 모습을 담았다. 크리스마스 대목을 앞둔 통속적 기획 아닐까. 의혹을 누를 길 없다. 하지만 ‘유리구두’에 대한 남성의 시선을 노골적으로 반영한 오병재 작가의 ‘Big heels’ 등 같은 소재에서 갈려나간 여러 표현법과 주제를 죽 늘어놓고 비교하는 재미가 그럭저럭 괜찮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