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벨리우스(사진)는 59세 때인 1924년 7번 교향곡을 쓴 후 사실상의 절필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한창 나이에 교향시 ‘타피올라’와 일부 소품을 빼면 손을 대지 않고 33년간의 긴 침묵에 빠진 겁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선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음악 사회가 크게 변했습니다. 기존의 음악 어법을 깬 ‘신음악’이 난무했고, 작곡가들은 작품마다 주목할 만한 변화를 보이지 않으면 ‘타성에 안주한다’는 질타를 받았습니다. 이미 성취할 만큼 성취한 시벨리우스가 펜을 내려놓은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뿐일까요. 자료를 찾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펜을 내려놓은 시점이 대략 두 가지와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그 무렵 시벨리우스는 술을 끊었고, 비슷한 시기에 평생을 따라다닌 빚을 다 갚았습니다.
1923년 시벨리우스는 헬싱키에서 자작곡 콘서트를 지휘할 예정이었습니다. 리허설을 마친 후 그는 카페에 가서 술을 주문했고 한 모금씩 마시다 만취했습니다. 간신히 제시간에 지휘대에 선 그는 몇 소절이 연주된 뒤 보면대를 딱딱 쳐서 연주를 중단시켰습니다. 리허설로 착각했던 겁니다. 객석에 앉아있던 부인은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이후 연주는 정상적이었을 뿐 아니라 아주 감동적이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곡인 2번 교향곡 연주 뒤엔 환호와 갈채가 밀려왔습니다. 이 경험 때문인지 시벨리우스는 이후 술을 거의 끊고 빚도 그 무렵 다 청산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창작의 불도 꺼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쓰다 보니 겁이 납니다. 마치 예술가들은 알코올의존증도 감수해가며 창작력을 불태워야 하고, 경제적 풍요는 창작력에 독이 된다는 주장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뜻은 아닙니다.
2015년은 시벨리우스의 탄생 150주년입니다. 국내외에서 북유럽의 대가를 기리는 기념 콘서트가 예정돼 있습니다. 자연주의적이고 환경친화적인 그의 음악은 21세기의 시대정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더 많은 음악 팬들이 그의 세계와 친해질 수 있기 바랍니다. 한 가지 더, 술자리가 많은 연말입니다. 모두들 건강에는 주의하면서 즐거운 시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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