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세계를 종횡으로 누비며 인류문명 탐방… “구대륙에 국한된 실크로드觀 탈피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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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실크로드 사전-도록’ 펴낸 정수일 소장

24일 정수일 문명교류연구소장이 지구본을 가리키며 457일에 걸친 ‘세계일주’ 코스를 설명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24일 정수일 문명교류연구소장이 지구본을 가리키며 457일에 걸친 ‘세계일주’ 코스를 설명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크리스마스이브에 만난 정수일 문명교류연구소장의 얼굴은 여든의 나이에도 잔주름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탄탄했다. 일흔한 살이던 2005년부터 올 6월까지 연평균 5회, 457일에 걸쳐 세계를 종횡으로 누빈 강철 체력이 얼굴에 드러난 듯했다. 남미 끝 우수아이아, 아프리카 끝 케이프타운, 아시아 대륙의 남단 카냐쿠마리 등 안 가본 곳이 드물다. 두 달 반의 아프리카 답사에선 비행기만 무려 32번을 탔다.

그는 이 ‘종횡 세계일주’를 통해 인류 문명의 발상지와 문명 교류의 흔적을 샅샅이 답사했다. 그 결과 지난해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실크로드 사전’을 포함해 6권의 교류사 책과 역주서를 펴냈고 최근 마지막 결실로 ‘해상 실크로드 사전’과 ‘실크로드 도록-해로편’(창비)을 발간했다.

그는 “이번 책은 세계일주의 최종 완성품이자 또 다른 출발점”이라고 했다. 해상 실크로드가 단순히 육지 실크로드의 후속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크로드는 중앙아시아를 통한 오아시스길, 시베리아 부근의 초원길, 동남아를 통과하는 해상길 등 3대 간선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이 중 오아시스길과 초원길은 중세 이후 사실상 끊겼습니다. 하지만 해상 실크로드는 나날이 발전해 15세기 이후엔 신대륙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로 연결되는 등 전 세계적 문명 교류의 통로가 됐습니다. 실크로드를 유라시아 대륙으로 국한시키는 기존 개념은 이제 폐기돼야 합니다.”

즉, 해상 실크로드라는 키워드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구대륙)의 문명 교류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전 세계적 문명 교류를 설명하겠다는 것이다 .

이를 위해 그는 내년에 ‘해상 실크로드 사전’ 영문판을 출간하고 추후 가칭 ‘문명교류 사전’과 ‘근현대문명교류사’를 집필할 예정이다. 그는 “‘문명교류 사전’의 경우 아프리카 남미까지 아우르는 표제어 5148개를 이미 골라놓았다”고 말했다.

그가 해상 실크로드에 주목하는 건 그가 새롭게 정립하려는 문명론을 뒷받침할 고리가 되기 때문이다.

“중남미에 갔더니 윷놀이 색동저고리 상투 등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조사한 문명의 현장에서 결국 인류 문명이 큰 줄기에선 하나라는 보편성을 확인했습니다.”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그는 실크로드를 통한 문명 교류사 연구에서 문명 자체에 대한 담론 연구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명을 힘과 힘의 대결 단위로 봐선 안 됩니다. 문명은 교류를 통해 발전하고 이것이 인류를 유지시켜 온 힘입니다.”

그가 앞으로 바라는 것 중 하나는 한국이 실크로드와 문명교류 연구의 메카가 되는 것. 중국이 ‘실크로드의 끝은 중국’이라는 식의 자국 중심적 연구를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전과 도록 출판은 메카가 되기 위한 초석을 놓는 작업”이라며 “최근 서울 주요 대학에서 실크로드 중앙아시아 유라시아 등의 이름을 내건 연구센터와 대학원이 활발하게 생겨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친 뒤 사무실 벽에 걸린 글씨를 보여줬다. 만공 스님(1871∼1946)이 무궁화 꽃잎을 붓 삼아 썼다는 ‘세계일화(世界一花)’였다. 세계는 한 떨기 꽃, 즉 세계는 하나라는 뜻이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해상 실크로드 사전#세계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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