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이브 엔슬러 지음·정소영 옮김/256쪽·1만3000원·자음과 모음
2001년 국내 초연된 뒤 10년 넘게 관객의 사랑을 받아온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런타임 내내 우리가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부끄러워하는 단어들이 서슴없이 등장한다.
홍보 포스터 맨 위에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우리 얘기해 보지’라는 문장을 내건 이 작품은 여성의 성기에 대해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지만, 사실 야하지 않다. 오히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문제 등을 고민하게 만들고, 성의 고귀함을 일깨워준다.
이 작품의 원작자인 극작가이자 사회활동가인 이브 엔슬러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성폭행당한 우울한 기억을 안고 있다. 이후 다른 여성들에게 ‘질’에 대해 집요하게 끊임없이 질문했고, 그 결과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탄생했다. 운명의 장난인 양 그는 자궁암에 걸렸고,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7개월간의 자궁암 투병기를 책으로 엮어 냈다.
저자는 ‘암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연금술사였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암 투병기를 통해 또 한 번 버자이너 모놀로그에서 보여준 힘을 드러낸다. 어린 시절 경험으로 자신의 몸을 부인해온 그는 콩고에서 끔찍한 성폭행을 목격하고 얼마 안 돼 자궁암 판정을 받게 되면서 자신의 몸을 다시 강하게 인식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단순히 자신의 투병기에 머무는 게 아니라 성폭행과 폭력 등으로 무너진 여성의 아픔을 절절하게 드러내며 독자로 하여금 여성의 성 인권에 대해 되돌아보게 만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