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2014년 12월 28일 일요일 흐림. 장어의 이름.
#138 신해철 ‘민물장어의 꿈’(1999년)
꼭 두 달 전 돌아간 가수 S를 추모하는 공연이 어젯밤 열렸다.
그가 이끈 록 밴드 넥스트 유나이티드의 콘서트다. 불완전한 음향과 연출, 산만한 구성이 아쉬웠지만 ‘날아라 병아리’ ‘민물장어의 꿈’에서 고인의 생전 목소리와 관객 5000명의 목소리가 겹칠 때 뭔가 뜨거운 게 여기서 올라왔다. 이 공연과 며칠 전 나온 S의 유고집 덕분에 인생의 유한성과 민물장어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젠 오래된 일이지만 난 B를 집으로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그 동네 민물장어요리 전문점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하필 정류장 앞에 식당이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민물장어 익는 냄새를 맡았다. 식당 밖 수조에선 수십 마리의 장어가 서로 몸을 엉겼다. 열 중 아홉은 2단 수조의 아래 칸에서 담담하게 죽음을 기다렸다. 위아래 칸을 잇는 작은 파이프관은 장어 한 마리 겨우 들어갈 굵기였는데, 간혹 어떤 녀석은 필사적으로 몸을 솟구쳐 거길 통해 위 칸으로 올라갔다. 장어의 생사를 멍하니 관조하다 보면 버스가 정류장에 멈췄다.
‘모처럼 장어 한 번 먹자’며 찾아온 손님들이 있었다. 장어가 맛있어서 누군가에게 정말 특별한 한 끼가 됐다고 하자. 장어 가게의 이름은 기억돼도 평생과 육신을 바쳐 식사가 된 장어의 이름은 기억되지 못할 거다. 애당초 장어에겐 이름도 없었다.
어제 공연장에서 대학 동기 G를 만났다. 두 달 전 S의 빈소에서 G는 “생각해보니 S와 장어를 먹으러 간 적이 있다. 장어를 좋아해서 ‘민물장어의 꿈’이란 노래를 만든 건 아닐까”라며 쓰게 웃었다. S도 장어의 수조를 관조했을까.
날 위한 식탁을 뒤로하고 내가 누군가의 식탁으로 오르기 전에 난 무엇으로 기억될까. 이름? 죽는 자는 배제되는 산 자들의 영원한 격류 속에 이름은 고작 한 끼의 무게로 소화돼 떠내려갈 것이다. 내 몸뚱이는 누군가의 특별한 한 끼가 될 만큼이라도 맛이 있을까. 어제 G와 G를 쏙 빼닮은 아이를 보며 어떤 생각에 빠져 들었다.
S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생명은 태어나는 것 자체로 목적을 다한 것이기 때문에 인생이란 그저 보너스 게임일 뿐이다. 따라서 보너스 인생을 그냥 산책하듯이 그저 하고픈 것 마음껏 하면서 행복하라.”
보너스 게임이 왜 이렇게 어렵기만 한 거요. 어이, S. 여보시오! 그 위엔 대체 뭐가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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