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윤희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쳤다. 2011년 아들을 잃은 데 이어, 살던 집을 떠나야 할 처지가 됐다. 시련 속에서도 꾸준히 신앙생활과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근황을 취재했다.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배우 정윤희(61)가 26년을 살던 정든 동네를 떠나게 됐다. 그의 남편 중앙건설 조규영 회장 명의의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가 경매에 나온 것. 조규영 회장이 지난 1988년 11월 구입한 이 아파트는 전용면적 196㎡(60평)로, 단지 안에서도 가장 큰 평형에 속한다. 최근 시가 25억원에 거래 된 바 있다. 채권자인 국민은행이 대출금과 이자 20억원을 받기 위해 경매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난 2014년 6월 18일 경매 개시결정이 내려졌다. 이 아파트는 20억원 이외에 여러 은행에 추가로 근저당이 설정돼 있어 등기상 채무액이 모두 52억원에 달한다. 이렇게 된 데는 조 회장이 경영 중인 중앙건설 경영 악화의 영향이 크다. 중앙건설은 ‘중앙하이츠’라는 브랜드로 아파트 건설 사업을 해왔으나, 글로벌 경제 위기와 건설 경기 침체로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지난해 3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한편 경매에는 이 아파트뿐 아니라 중앙건설 소유의 경기도 고양시 탄현동 40개 필지 토지(감정가 4백85억원)도 함께 나왔다. 하나은행이 4백42억원을 돌려받기 위해 경매를 신청했다. 부동산 경매를 전문으로 하는 법무법인 열린 측은 “모든 채무를 변제하면 경매가 취소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채무를 갚을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결혼 후 20년 넘게 신앙생활·봉사 열심히 해 정윤희는 한때 장미희, 유지인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리며 영화계를 이끌었다. 1975년 영화 ‘욕망’으로 데뷔했으며, 1977년 드라마 ‘청실홍실’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영화 ‘꽃순이를 아시나요’ ‘나는 77번 아가씨’ 등에서 주연을 맡아 흥행을 이끌어냈으며 1981년에는 정진우 감독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와 ‘앵무새는 몸으로 울었다’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연거푸 거머쥐었다. 그러나 화려했던 배우로서의 삶은 1984년 심재석 감독의 영화 ‘사랑의 찬가’로 막을 내린다. 조규영 회장과의 결혼과 함께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은 순탄치 않았다. 정윤희를 만나던 당시 조 회장은 이혼 절차를 밝는 중이긴 했지만 법적으로 유부남이었고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두 사람은 적잖은 곤욕을 치렀다. 결혼 후 연예계를 떠나 평범한 주부로 살았던 정윤희는 2011년 충격적인 사건을 맞는다. 결혼 5년 만에 얻은 막내아들이 미국 유학 도중 사망한 것.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정윤희는 왕년의 스타였지만 이웃 주민들에게는 친근한 ‘동네아줌마’일 뿐이었다. 특히 그는 지역 성당에 오래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천주교 신자로 통했다. 성당 내 봉사 모임을 통해 병원 등에서 오랫동안 봉사를 해왔다. 성당 사람들은 그를 “마음도, 얼굴도 예쁜 자매님”이라고 입을 모았다. “연예계를 떠난 다음부터 계속 성당에 다닌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성경공부와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행사) 사회도 보고. 교인들에게도 예의 바르게 잘하는 사람으로 유명해요. 한때 배우였다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소탈하고, 누구에게든 친절하게 대하죠.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아름다워요.” 정윤희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도 변함 없이 미사에 참석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등 지인들에게조차 힘든 내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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