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치열한 삶의 현장서 스스로 즐겁게 사는법… 중국인들 열띤 호응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8일 03시 00분


영어강사 출신 中 기업인 뤄융하오 강연 모음집

‘중국인들은 말을 잘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남의 말이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한다. 인기 연예 프로그램에서 우리도 한때 유행했던 만담에 해당하는 ‘샹성(相生)’이 지금도 빠지지 않는다. 웬만한 크기의 중국 공항 서점에는 있지만 다른 나라에는 없는 것이 있다. 유명 인사들의 강연 비디오다. 영어 강사로 출발해 세계 최대의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를 창업한 마윈(馬雲) 등 기업인이나 사회 명사들의 동영상 강연이 비디오에 담겨 있다. 베이징에서 택시를 타면 투박하고 분명하지도 않은 베이징 방언으로 주로 옛날 고전의 한 대목과 뒷얘기 등을 늘어놓는 방송을 기사가 끊임없이 틀어놓고 듣는다.

이런 중국 사회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하면 지난해 11월에 출간된 책 ‘생명이 끝나지 않는 한 분투도 멈추지 않는다(生命不息 折騰不止·사진)’가 왜 인기를 끄는지 알기 어려울 수 있다. 제목만 보면 깊은 사색을 통한 통찰이 유려한 문장으로 쓰였을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전문 작가의 글이 아니다.

‘한 이상주의자의 분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중국 최대 영어교육 학원그룹의 인기 영어강사 출신이자 기업인 뤄융하오(羅永浩·44)의 강연 모음집이다. 2009년에 진행된 ‘영어강습 전국대학 비영리 순회강좌’, 2010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베이징의 극장에서 진행된 3차례의 ‘한 이상주의자의 창업 이야기’ 강연회 등이 담겼다. 이 책은 중국의 책 전문 사이트인 당당왕(當當網) 등에서 꾸준히 10위 안에 머물고 있다. 독자들은 이야기를 듣듯이 책에 빨려 들어간다. 뤄융하오는 명사들의 평론과 블로그 등을 연결하는 뉴보왕(牛博網), 스마트폰 부품업체인 추이쯔커지(錘子科技·영어명 Smartisan) 등을 창업하거나 개설했는데 그럴 때마다 했던 연설들도 실렸다.

그의 얘기 속에서 독자들은 한 기업인의 성공담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과 빠른 변화 때문에 ‘나무로 깎은 닭처럼 얼이 나가 있는’(중국의 고사성어)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 스스로 즐겁게 사는 방법을 찾는다. 그의 강연은 몇 마디 걸러 한 번씩 박수와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는 굴지의 영어학원 기업 신둥팡(新東方)에서 유학생을 위한 GRE 강사를 맡은 적이 있는데 유머가 넘치는 그의 강의는 수강생들에 의해 ‘라오뤄 어록’(‘라오’는 나이 든 사람에 대한 중국식 표현)이라는 이름으로 녹취 정리돼 인터넷에서 널리 돌았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해학 속 진지함’의 내공이 쌓인 것이다.

자신의 책을 추천한 말이 흥미롭다. “깨끗하게 돈을 버는 것을 보여줘 사람들이 깨끗하게 돈을 벌 수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 가능한 곳, 이상을 실현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게 하는 곳, 세계를 바꿈으로써 사람들에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게 하는 곳, 그곳이 중국이다.” “당신이 맞다고 생각한 것을 버리려고 할 경우 이 책을 보기를 권한다.”

유력 주간 신문인 난팡(南方)주말은 “그는 온통 반역의 기질로 가득 차 투사의 자세로 불공정한 사회질서를 조롱하고 이에 맞서 싸워 이겼다”고 뤄융하오를 평가했다. 인터넷의 한 서평은 “우리는 모두 그와 같은 천진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 가슴속에 있는 천진함을 불러와 호응하기를 바라고 있는지 모른다”고 소개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뤄융하오#샹성#마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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