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자들 논의과정 드러내기 꺼려
공간재생은 문화적 가치 재생산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추진해야
“박수근이 누구지?”
“백남준…? 아, 그 TV 뚝딱거리던 사람? 그이가 여기 살았다고?”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신동. 거리를 지나는 사람 10여 명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곳이 박수근 화백 작업실 터 맞나요?” “백남준 씨가 어릴 때 이 동네에 살았다던데요?”
머리 희끗한 중년 이상 행인만 붙들었지만 누구도 몰랐다. 문 걸어 잠근 길가 국밥집 간판 뒤편에서 박수근 화백(1914∼1965)은 생애 마지막 10여 년을 머물며 숱한 대표작을 그려냈다. 국밥집 문 발치께 붙은 작은 표지판이 빗자루로 반쯤 가려져 있었다. 교회와 단층 가옥이 다닥다닥 들어찬 비탈진 땅에는 한국이 낳은 천재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어린 시절이 묻혀 있다.
근현대 한국 예술을 대표하는 두 거장이 머물렀던 공간에 새로운 예술문화 거리를 조성한다는 소식(본보 8일자 보도)은 사실 새삼스럽다. 당연히 존재해야 했던 것을 뒤늦게 재구성하려는 마당이건만 취재는 수월하지 않았다. 한 발 한 발 더듬어 찾아낸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계획 추진 사실과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행정적 논의 절차를 마치기 전에 일반에 알려지면 곤란할 듯하다”고 했다.
뭐가 곤란한 걸까. 조심스러움의 첫 번째 대상은 거리 조성의 본질적 의미보다 이 계획의 발의를 누가 하고, 시행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에 주목하는 행정 당국의 분위기였다. 두 번째는 해당 지역 부동산 재산권을 가진 이들과의 마찰이었다.
하지만 이런 조심스러움은 공간계획의 취지를 역으로 왜곡하는 소극적 태도로 읽혔다. 거주민의 생활편의 또는 부동산 재산권을 배려한 도시개발 계획과 지역 예술문화의 역사적 가치를 고양하는 공간재생 프로젝트는 별개 사안이 아니다. 응당 양면을 균형 있게 고려하며 추진할 일 앞에서 머뭇머뭇 눈치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문화예술을 포함한 어떤 분야에서든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의 생활공간을 보존해 여행자의 순례지로 삼은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 명소를 보유한 거리는 북적이는 방문객으로 늘 활기를 띤다. 소중한 인물의 흔적이 남겨진 공간을 우리는 지금까지 어떻게 관리했나. 지난해 건축계는 거목 김수근의 옛 집무공간이 부동산 매매 과정에서 속절없이 사라지는 일을 겪었다.
박수근과 백남준의 자취를 되새기는 문화예술 거리 프로젝트는 이 나라 문화정책이 지향하는 가치관을 증명하는 의미 깊은 발걸음이 될 수 있다. 몇 해 뒤 창신동 거리에서 “박수근, 백남준이 누구지?”라는 반문을 다시 듣지 않게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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