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친구로 다시 하나된 ‘원스’의 두 연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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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11일 일요일 맑음. 한때.
#140 Leonard Cohen ‘Passing Through’(1973년)

듀오 ‘스웰시즌’ 재결합 서울공연

10일 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노래한 마르케타 이르글로바(왼쪽에서 두 번째)와 글렌 핸사드(왼쪽에서 세번째). 프라이빗커브 제공
10일 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노래한 마르케타 이르글로바(왼쪽에서 두 번째)와 글렌 핸사드(왼쪽에서 세번째). 프라이빗커브 제공
“이미 오래전에 그녀와 사랑에 빠진 터였죠. 하지만 스스로에게 계속해 말했어요. ‘그녀는 (아직) 아이잖아….’”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 편집된 조병만 할아버지의 대사 같지만 실은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글렌 핸사드가 2007년 미국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음악영화 ‘원스’의 상대역인 마르케타 이르글로바를 두고 한 말이다. “열네 살 때 아무것도 모르고 혼사를 치렀는데… (조병만) 할아버지가 몇 년 동안 (날) 건드리지를 않는 거예요. 나중에 물어보니까 (내가) 아이라서 다칠까봐 그랬대.”(‘님아…’ 중 강계열 할머니 대사)

둘이 처음 만난 2001년에 핸사드는 서른한 살, 이르글로바는 열세 살이었다. 이르글로바는 그의 음악 동지가 됐고 몇 년 뒤 연인이 됐으며 그의 친구가 연출한 음악영화(‘원스’·2007년)를 통해 스타가 됐다. 핸사드와 헤어지고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됐으나 3년 전 이혼했다.

둘이 결성한 듀오 스웰시즌이 10일 밤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3년 만에 재결합했다. 둘은 ‘원스’에 실린 ‘라이스’ ‘폴링 슬롤리’부터 이후 발표한 ‘아이 해브 러브드 유 롱’ ‘백 브로크’까지 스물다섯 곡을 5년 전 내한 때보다 강한 에너지로 연주하며 2시간 동안 객석을 무대 쪽으로 빨아들였다. 영화 속에서 우유부단하게 속삭이던 ‘원스’의 ‘이프 유 원트 미’ ‘더 힐’을 이제 프로다운 안정된 발성과 비브라토로 부르는, 이제는 솔로 음악가인 이르글로바의 성숙이 어쩐지 낯설고 야속했다.

핸사드는 공연에 앞서 한 전화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악영화로 레너드 코언의 공연 다큐멘터리 ‘버드 온 어 와이어’(1974년)를 꼽았다. 이번 무대의 마지막 곡은 거기 실린 ‘패싱 스루’였다. 공연 뒤 대기실에서 만난 핸사드는 “그녀는 아기도 있다(she’s got a baby)”고 했고 “‘패싱…’은 스쳐감의 연속인 우리네 인생을 노래한 곡”이라며 빙긋 웃었다. ‘우린 모두 길 위에 있다네/우린 그저 지나갈 뿐이라고.’(‘패싱 스루’ 중)

이제 친구가 된 두 연인의 대기실은 따로 있었다. 잠시 후 이르글로바가 밤 인사를 하러 핸사드의 대기실 앞에 나타났다. “…그녀와 함께 다시 무대에 선 건 꼭 자전거 타기 같았어요. 예전 어딘가로 돌아가 페달을 밟으면서 그 아름다웠던 풍경을 다시 스쳐가는….”(핸사드)

그는 그녀를 짧고 가볍게, 그러나 깊게 한 번 껴안고 놔줬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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