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4년, 프란츠 리스트는 ‘교향시’라는 새로운 관현악 장르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때까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교향곡은 내용을 설명하는 ‘표제’가 없거나 있어도 추상적인 제목만 있었지만, 교향시는 내용을 설명하는 ‘시’ 또는 줄거리가 달려 있고 음악으로 이를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리스트가 말한 교향‘시’는 서정시가 아니라 ‘프로메테우스’ ‘오르페우스’ 같은 제목들에서 보듯 영웅을 내세운 서사시에 가까웠습니다. 체코의 스메타나 같은 다른 나라 작곡가들도 표제 관현악에 흥미를 보였지만 이들의 작품도 극적인 줄거리를 지닌 서사시 풍이었습니다.
이윽고 서쪽의 프랑스 작곡가들도 표제적인 관현악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작품은 달랐습니다. 먼저 ‘풍경’이나 ‘인상’이라는 말이 따라붙었습니다. 마스네는 ‘그림 같은 풍경’ ‘알자스의 풍경’ 같은 관현악 모음곡을 썼고, 샤르팡티에는 ‘이탈리아의 인상’이라는 곡을 썼습니다. 영웅적 줄거리가 아니라 ‘장면’을 음악으로 묘사하게 된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동쪽 나라들에 비해 프랑스는 ‘빛’이 풍성하고 근대 미술의 전통이 우세한 곳이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1870, 80년대 클로드 모네를 필두로 한 인상주의가 미술계 전면에 나서면서 다른 예술 장르들도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19∼20세기 교체기에 프랑스 음악 거장 드뷔시와 라벨은 ‘인상주의 음악 거장’으로 불렸습니다. 드뷔시는 이 용어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냈지만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바다’, 라벨의 발레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 등을 들으면 이 시기 미술의 특징과 음악작품의 특징이 매우 닮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인상주의 미술에서 윤곽선이 흐릿해지듯이, 이들 작품에서는 선율이 해체되어 동기(motive)들로 떠다닙니다. 인상주의 미술에서 안료들이 중첩되며 그동안 없던 색감을 만들어냈듯, 화음도 예전의 규칙에서 벗어나 중첩되며 새로운 음의 인상을 표현합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2월 15일까지 ‘인상파의 고향 노르망디’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모네와 쿠르베, 터너 등이 만들어낸 생생한 빛의 마술을 맛보며, 드뷔시와 라벨이 지어낸 매혹의 화음도 떠올리는 기회가 되었으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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