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승 국수(33)는 부드러운 기풍으로 균형을 맞춰가는 바둑으로 유명하다. 세상을 닮아 사나워진 요즘 바둑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 유연한 바둑으로도 그는 당대의 고수인 최철한 9단과 이세돌 9단을 상대로 국수(國手) 자리를 3연패 했다. 하지만 30세를 넘기며 힘이 부친 탓일까. 지난해 처음으로 랭킹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래도 그는 국수전에 남다른 애착을 보여왔다. 올해 제58기 국수전에서도 랭킹 1위 박정환 9단(22)에게 1, 2국에서 패해 “이제는 어려운 가 보다” 싶을 때 3국에서 귀중한 반집승을 거뒀다. 그것도 자기류의 바둑이 아니라 먼저 실리를 확보하고 적진에 뛰어들어 타개를 하는 바둑으로.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조한승은 14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4국에서 박정환에게 173수만에 불계패했다. 종합전적 3-1. 박정환은 처음으로 국수 자리에 올랐다. 입단 9년 만에 가장 갖고 싶었던 국수 타이틀을 따내 소원을 풀었다. 박정환은 58기 역사상 12명에게만 허용됐던 명예로운 호칭인 ‘국수’로 불리게 됐다.
흑을 쥔 박정환은 이날 우변에서 백의 대마를 잡아 승기를 잡았다. 이후 조한승이 국면을 흔들었으나 차분하게 대응해 승리를 이끌어냈다.
박정환은 앞서 국수전 본선에서 진시영 6단을 누른데 이어 신진서 2단, 박민규 3단 등 신예의 돌품을 잠재우고 도전자결승전에서 난적 김지석 9단을 이기고 도전자가 됐다.
박정환의 포석과 수읽기, 사활, 형세판단 등 모든 분야에 강한 바둑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실제 그는 14개월째 한국 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83승 26패로 다승 1위 승률 1위(76%), 최다 연승(18연승) 등 기록 부문 3관왕에 오를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아직 1인자다운 독특한 자기 스타일을 갖지 못했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이제 그는 국수 타이틀을 따내면서 그의 시대를 여는 데 한발 더 다가섰다.
박정환은 이제 천원에 이어 국수까지 2관왕. 지금까지 그가 딴 타이틀은 14개다.
국수전은 초대 조남철 국수를 비롯해 김인-하찬석-조훈현-서봉수-이창호-이세돌-최철한-조한승 등 한국 바둑의 정통 계보를 이어온 최고(最古)의 대회. 시상식은 30일 동아일보사에서 열린다. 국수전은 기아자동차에서 후원한다. 우승상금은 45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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