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로부터 소외 당한 제주인의 꿈과 삶 오롯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5일 03시 00분


제주 설화집 ‘섬에 사는 거인의 꿈’

제주 성산일출봉과 해안 모습. 제주 설화 속에는 육지(중심부)로부터 차별을 당했던 주변부의 설움과 삶, 설움을 이겨 낸 과정이 스며 있다. 동아일보DB
제주 성산일출봉과 해안 모습. 제주 설화 속에는 육지(중심부)로부터 차별을 당했던 주변부의 설움과 삶, 설움을 이겨 낸 과정이 스며 있다. 동아일보DB
먼 옛날…. 제주도에는 ‘설문대할망’이라는 거인이 살았다.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다리가 제주 앞바다의 관탈섬에 걸쳐졌고, 오줌을 누면 땅이 파여 제주도 땅 한부분이 쪼개져 나갈 정도였다. 쪼개진 땅은 ‘우도’가 됐다.

어느 날 거인은 제주 사람들에게 “명주 속옷을 한 벌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제안했다. 사람들은 귀가 솔깃했다. 문제는 명주의 양, 거인에게 맞는 옷을 만들려면 명주 100필은 필요했다. 사람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99필밖에 모으지 못했다. 이에 거인은 다리를 조금 만들다 중단했다. 현재 제주시 조천읍 조촌리와 신촌리 마을 앞 바다에 튀어나온 부분이다.

이처럼 제주도에는 풍부한 설화와 민담이 있다. 제주처럼 좁은 지역에서 다양한 구비문학을 갖고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계간지 ‘본질과 현상’이 제주 설화를 모은 책 ‘섬에 사는 거인의 꿈’(사진)을 최근 냈다. 주로 구술로 전달돼 일반인이 접하긴 힘들었던 40여 개의 제주 설화를 현대적 언어로 바꿔 소설처럼 술술 읽히게 만든 것.

‘제주도를 왕이 태어날 땅으로 생각한 중국 황제가 풍수사를 파견해 지맥을 막아 버렸다’는 ‘고종달형’ 설화는 육지인에게 억압당한 역사에 대한 제주인의 자의식이 투영됐다. 제주 설화의 주 내용은 뛰어난 능력을 타고 났지만 세상(육지)으로부터 외면받는다는 것이다. 제주의 천하장사가 한양으로 가 공을 세우지만 오히려 임금은 그 놀라운 능력을 경계해 상을 주지 않았다는 ‘오찰방 설화’가 대표적이다.

‘본질과 현상’ 발행인인 현길언 전 한양대 교수(75)는 ‘제주 설화와 주변부 사람들의 생존양식’도 함께 출간했다. 설화를 통해 제주 사람들의 사유 방식을 고찰한 연구서다. 현 교수는 “왕이 태어날 수 있었던 땅을 강조하는 제주 설화는 차별과 왜구 침탈 등 비극적 상황을 극복하려 했던 제주인의 사유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제주도#설화집#섬에 사는 거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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