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우리가 느끼는 것들을 다시 보자”… 그림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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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담은 그림’을 쓴 채운 씨

화가 파울 클레의 그림 ‘별들이 구부리는 법을 가르친다’에는 단순한 굵은 선으로 그려진 별과 구불구불하게 그려진 사람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사람은 네 발로 기어가는 듯도 하고, 등을 굽히고 걸어가는 듯도 하다.

“등을 굽히고 네 발로 기었던 어린아이 시절을 벗어나 중심을 잡고 안정되게 살아가는 듯하다가도, 나이가 들면 다시 구부러져요. 그게 인간이죠. 언젠가는 구부러진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는 게 우리 삶의 가장 큰 문제의 근원입니다.” ‘철학을 담은 그림’(청림출판)의 저자 채운 씨(44·사진)의 설명이다.

‘철학을 담은 그림’은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고전비평공간 ‘규문’의 연구원으로 철학을 공부해 온 저자의 에세이다. 저자의 학문 이력이 오롯이 담긴 이 책은 화가들의 다양한 그림을 통해 현대인의 일상적 삶을 돌아보면서 성찰을 던진다. 가령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에서 그림 속 여성 크리스티나는 들판에 주저앉아 언덕 위의 집을 바라보고 있다. 저자는 크리스티나의 힘겨워 보이는 뒷모습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현대인의 피로감을 읽는다.

“상위 1%가 아닌 사람들은 그 1%에 들기 위해 아등바등하다 보니 피로하고, 1%에 든 사람들은 그 자리를 지키려다 보니 피곤하고, 이래저래 모두가 턱밑까지 피로에 차 있어요. 그럼에도 피로를 그대로 감수하면서 ‘고(go)’를 외칠지언정 자신의 피로를 주시하고 마음을 돌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우리 모두의 초상이 크리스티나의 뒷모습이 아닐까요?”

르네 마그리트의 ‘복제되지 않는’은 거울을 보는 남자의 그림이다. 그런데 그 거울에 비친 건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이다. 인간은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존재이지만, 생각해 보면 거울에 비친 앞모습도 반대라는 점에서 자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자신을 볼 수도,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는, 그야말로 자신에 대해서 ‘남’인 셈입니다. 그림 제목대로 우리는 복제가 불가능한 존재들이에요. 내가 맺는 관계들이 쉼 없이 변하고 그때마다 욕망이 펄떡거리며 날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관계와 욕망들을 거울삼아 자신을 바라보지 못하면, 누군가를 원망만 하게 되고 결국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현대인은 타인의 모습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과정이 필요한 거죠.”

저자는 그림이나 음악, 문학작품 같은 예술은 “우리가 느끼는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도록 만드는 재료”라고 말했다. 미술 작품을 통해 지금껏 ‘나’라고 믿어 왔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서 삶에서 겪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도 우리 자신이고 되어야 하는 것도 우리 자신이며, 우리는 오로지 우리 자신만을 변화시킬 수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독자들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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