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0세기는 1876년 개항으로부터 시작돼 아직도 계속된다고 할 수 있다. 전반기는 식민지와 6·25전쟁 등으로 얼룩졌고 후반기는 군부독재와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로 이어졌다. 21세기, 2000년대에 진입한 지금도 한국의 20세기는 현재진행형인 상황이다.”
최근 출간된 임혁백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사진)의 ‘비동시성의 동시성’(고려대출판부)은 한국 정치의 과제를 파고든 저서다. 분석의 틀은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의 ‘비동시성의 동시성’ 이론이 바탕이 됐다. 블로흐의 이론은 다른 시대에 존재했던 사회적 요소들이 같은 시대에 공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임 교수는 공존뿐만 아니라 충돌이라는 한국적 상황에도 주목했다. “한국의 경우 주요 국면마다 다양한 비동시성이 공존했을 뿐 아니라 충돌하기도 했다. 역사적 격랑을 거친 한국의 20세기에 이런 역사적 시간의 충돌이 많이 나타난다.”
이 책은 이 충돌의 현장을 시기별로 조명했다. 전근대를 벗어나지 못한 한국 사회에 모더니즘이 등장하면서 서로 충돌했던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 해방공간 미군정에서 충돌의 시간이 펼쳐진다. 6·25전쟁은 근대로 가는 시간을 단축하는 계기가 된 반면에 집권자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전근대적인 전통을 도구로 삼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1960년대에도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이 충돌했다는 점에서 비동시성을 발견할 수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자유민주주의 시대가 열렸지만 이른바 3김은 연고주의와 정실주의 등 과거의 정치유산을 버리지 못한다.
저자의 결론은 이렇다. “현재 한국의 충돌 구조는 권위주의적 산업화와 민주적 발전론이다. 하지만 선택은 민주주의여야 하며, 그것은 다원주의적 공존과 균형의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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