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행이 아니어도 길 찾기가 만만찮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은 그런 동네다. 경복궁 서측 담장 건너편에 앉은 덕에 옛길 자취가 군데군데 남았다. ‘어라, 이 골목이었는데’ 싶으면 영락없이 몇 발짝 잘못 짚어 꺾어든 거다.
두 여인이 7년 전 이곳에 간판 없는 가게를 냈다. 원래부터 식당을 차리려 한 건 아니다. 디자인을 전공한 이희재(36) 안지윤 사장(35)은 대학원에서 만나 식도락 취향으로 의기투합했다. 함께 작업실을 꾸렸지만 디자인 일감만으로는 유지가 벅찼다. 공간 한쪽에 테이블 3개를 놓고 부업 삼아 밥장사를 개시했다. “한 달 매출 50만 원쯤이면 월세는 어떻게 되겠지.” 메뉴는 파스타 3종뿐이었다.
계획은 흔하지만 계획대로 되는 일은 드물다. 간판 없이 상호만 등록한 식당이 입소문을 타고 북적였다. “찾아가기 너무 힘들잖아!” 꾸짖음 가까운 항의전화가 이따금 걸려온다. 하지만 간판은 앞으로도 달지 않을 거다. 이 사장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동네 단골들과 소박하게 즐기며 살아가려 한 초심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했다.
주 메뉴는 손 반죽 생면 파스타다. 생면은 건면과 달리 물 없이 밀가루와 계란을 반죽해 뽑는다. 이탈리아에도 기계를 쓰지 않고 순전히 손으로만 반죽하는 식당은 많지 않다. 조그만 가게지만 맛의 깊이를 추구하려 한 걸까. 그런 거 아니다. “건면은 너무 비쌌고 생면 뽑는 기계 살 돈도 없었죠. 원가 절감을 위해 몸으로 때운 거예요.”
단골이 늘어나니 대충 하고 싶지 않았다. 개업 2년 뒤 3개월간 휴업하고 이탈리아 구석구석 식재료 원산지를 돌아다녔다. 소화제를 삼키면서 하루 평균 4끼를 먹었다. 손님의 호오(好惡)가 극명히 엇갈리는 프로슈토 주키니 파스타는 본산인 파르마에서 맛보고 벤치마킹했다.
프로슈토는 돼지고기 뒷다리 살을 바람에 말린 햄이다. 고릿한 뒷맛이 특유의 매력이지만 호기심에 주문했다간 후회할 공산이 크다. 느른한 식감이 탱글탱글한 주키니(애호박)와 함께 씹히며 명료한 호응을 이룬다. 상호 ‘디미’는 대학원에서 읽은 조선시대 요리책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서 가져왔다. 답사 뒤 ‘알아낸 맛’을 반영해 반죽 재료를 개선했다. 예상과 달리 “쫄깃한 면발이 사라졌다”는 항의가 쏟아졌다. 두 사람은 굳이 까닭을 설명하지 않았다. 단골들은 두 여인의 뚝심을 함께 즐겨 줬다.
바로 근처 아트팩토리에서 2월 3일까지 ‘여심(女心)’전이 열린다. 도보로 2분 거리지만 좁은 골목 안에 꽁꽁 숨어 있다. 참여 작가 임영숙 씨(55)는 20여 년 동안 줄기차게 ‘밥’만 그렸다. 가득 담은 밥공기 위에 갖은 꽃을 피워 올렸다. 민들레, 매화, 벚꽃, 목단이 탱글탱글 밥알 위에 만발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두 가지에 천착한 작업이다. 밥과 아름다움. 예술하며 삶을 버텨내기. 역시나, 아름다운 뚝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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