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2년 아비규환의 나라 우라질 공화국은 판사, 변호사에 붙는 사(事, 士)는 떼버리고 상(商)을 붙였다. 양형마저 물건 사듯 돈으로 거래하던 사법기관은 아예 상을 달았다. 오늘날 한국 사법의 어두운 부분과 묘하게 닮았다. 사회보다 차라리 교도소가 더 나은 세상에서 범죄자만 늘어나자 우라질 대통령은 살인 이하 범죄자를 모두 석방하는 ‘범죄완화특별조치법’을 통과시킨다. 이에 거대 교도소 운영기업 로텍(Lawtech)은 의원들을 매수해 획기적인 법안인 ‘상상금지법’을 통과시킨다. “당신을 상상범(想像犯)으로 체포합니다.”
소설가 권리(필명·36)가 6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상상범’(은행나무)을 출간했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그는 2004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싸이코가 뜬다’로 등단해 ‘왼손잡이 미스터 리’, ‘눈 오는 아프리카’까지 장편만 고집하며 기발한 소재와 착상으로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작품을 썼다. 16일 서울 상계동의 한 커피집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권리는 “(상상범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즈음”이라고 밝혔다. 그는 “2009년 미네르바 사건(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내게 충격이었다. 미네르바는 인터넷상에선 유명했지만 알고 보니 백수였다. 익명의 존재인 그를 사법 살인의 희생양으로 삼는 현실에 충격받았다”고 했다.
주인공인 연극배우 기요철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권력층의 딸인 이율리와 ‘화학적 교미’를 상상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된다. 교도소에 갇힌 그는 감시자를 죽이는 상상을 했다가 상상살인 죄까지 추가된다. 기요철과 이율리가 극단적인 검열을 밀어붙이는 권력에 맞서보지만 역부족이다. 기요철은 사형 선고를 받는 순간 뼛조각과 모래로 변해 최후변론도 하지 못한다.
“모래성을 손으로 스윽 밀면 사라지듯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모래처럼 사라지는 개인을 그리고 싶어 환상적인 결말로 처리했어요. 현실이 가상을 압도하는 시대엔 현실이 최고의 작가입니다. 소설을 쓰려면 가상세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현실이 너무 앞서가니 쫓아가기 바빴습니다.”
권리는 계간지 ‘문학의오늘’에 연재한 소설을 1년간 퇴고하며 1068번쯤 욕설을 내뱉고 318번쯤 인물을, 128번쯤 구성을 바꿨다고 했다. 그런 소설을 누구에게 가장 읽히고 싶을까.
“요즘 ○부심이 유행인데 저는 똘기 하나만 믿는 똘부심으로 살았어요. 베스트셀러 1, 2위를 다투는 소설만 읽고 그것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 돋는 사람들 말고, 똘기로 세상을 살고 세상을 부조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으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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