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를 들여다보면 작곡가가 죽은 뒤 꽤 세월이 지나서야 깜짝 발견된 명곡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전 이 코너에서 소개한 슈만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그렇고,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미완성’도 40년 동안이나 서랍 속에 들어 있다가 발견된 작품입니다.
작곡가가 죽어서 다른 사람이 마무리한 명곡도 많습니다.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와 모차르트 레퀴엠이 대표적인 사례죠. 그렇다면 이런 얘기는 어떨까요? 2010년에 죽은 작곡가의 유작 교향곡이 뒤늦게 발견됐고, 그의 아들이 완성시켜 발표했다면?
“현대 작곡가도 많은데, 유명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나오겠죠. 하지만 “헨리크 구레츠키의 교향곡 4번이 나온 거야”라고 대답한다면, 많은 사람이 눈을 크게 뜰 겁니다.
폴란드의 작곡가 헨리크 구레츠키는 1977년 교향곡 3번 ‘슬픈 노래의 교향곡’을 발표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발견된, ‘엄마’를 부르는 낙서를 가사로 쓴 2악장이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이 곡은 1992년 처음 논서치사가 CD로 발매한 뒤 영국 음반차트 6위(클래식이 아니라 전 부문 합산)에 올랐고 미국 클래식 음악 차트에서는 138주 동안이나 1위를 지켰습니다. ‘현대에 창작된 음악은 인기가 없다’는 통설을 뒤집은 ‘구레츠키 현상’이었습니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2007년 이 작곡가에게 ‘교향곡 3번을 잇는 다음 교향곡을 써 달라’고 위촉했습니다. 구레츠키는 2010년 77세로 사망했고, 작품 위촉 사실은 잊혀졌습니다. 그의 아들인 작곡가 미콜라이 구레츠키가 아버지의 악보더미를 뒤지다가 이 작품의 피아노 악보가 마무리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미콜라이는 이 곡의 관현악 악보를 완성했고, 작품은 지난해 4월 런던필이 세계 초연했으며 LA필은 이달 16일에야 처음 연주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구레츠키다운 영감이 넘치는 작품”이라고 찬사를 보냈습니다.
오늘날 한국은 미국 유럽에 대해 문화적 시간차를 크게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뜨거운 소식을 현장과 동등하게 따라잡기는 힘들군요. 어서 들어보고 싶습니다. 구레츠키의 유작인 교향곡 4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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