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박현기 회고전 ‘만다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7일 03시 00분


백남준에 가려진 또 한명의 미디어아트 거장

1980년대 박현기가 발표한 비디오 돌탑 시리즈를 모티브로 재구성한 전시실. 작가는 어린 시절 6·25전쟁 피란길에 경험한 돌탑 쌓기의 기억을 미디어 작품 주제로 끌어들였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1980년대 박현기가 발표한 비디오 돌탑 시리즈를 모티브로 재구성한 전시실. 작가는 어린 시절 6·25전쟁 피란길에 경험한 돌탑 쌓기의 기억을 미디어 작품 주제로 끌어들였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내가 죽은 뒤 모든 미완성 원고를 불태워 줘.” 프란츠 카프카의 유언이다. 5월 2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박현기 1942∼2000 만다라’전은 카프카의 심정을 돌이켜 헤아리게 만드는 회고전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유가족에게서 작품과 자료 2만여 점을 기증받아 2년에 걸쳐 정리했다.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학창 시절 메모부터 전성기 대표작을 재현한 설치물, 작고할 무렵 남긴 아이디어 스케치까지 1000여 점을 선보인다”고 말했다. 박현기는 국내외 개인전과 광주비엔날레 참여로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 위암 판정을 받고 숨을 거뒀다.

전시 타이틀은 1997년 여름 미국 뉴욕에서 공개한 영상 작품 제목에서 가져왔다. 만다라는 우주의 본질적 깨달음을 형상화한 원형 불화(佛畵)다. 둥그렇게 영사되는 화면 속에 형형색색 군상이 뒤얽혀 야릇한 움직임을 반복하며 어지럽게 전환된다. 잠시 뜯어보면 개별 영상이 포르노 이미지임을 알 수 있다. 만다라를 정립한 인도 밀교(密敎)가 8세기 이후 성력(性力)을 중시하는 탄트라로 이어짐에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미술관 측은 “같은 시기 활동한 백남준만큼 화려한 명성은 얻지 못했지만, 박현기는 서구 미디어 기술에 동양 사상을 녹여내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맥락 없이 툭툭 끊어진 전시 배치는 작가의 차별화된 스타일을 설명만큼 또렷이 드러내지 못한 채 겉껍질을 맴돈다.

작가가 남긴 육성의 흔적은 작품보다 작업 노트에 또렷하다. 1990년대 전시 포스터 한가운데 펴든 다섯 손가락 옆 낙서에 평소 매달린 상념이 빽빽이 적혀 있다. “사람 얼굴에는 오관(五官·다섯 가지 감각기관)이 있고, 음(音)의 기본도 다섯 가지고, 사람의 기운에도 다섯 종류가 있고, 땅에는 5개 방위가 있고, 기본 색상도 다섯 가지다.”

박현기는 20대 때 전통문화 공부에 매진하며 영상 미디어로 이미지를 전하는 본질적 까닭을 먼저 찾으려 했다. 굳이 모든 작업 기록을 털어내, 작가가 세상을 떠나고 15년 뒤 옛 이미지를 끌어 모아 드러내는 까닭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고인이 지금의 전시에 동의할지, 미심쩍다. 02-2188-6000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박현기#회고전#만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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