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해 계셨다면 본인 함자 내건 미술관에 음식과 차를 파는 가게 내는 걸 허락하지 않으셨을 거예요. 미술관 건물이 너무 크다 하셨을 수도….”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 내 카페 ‘사미루’(02-3217-6485)의 사장은 한사코 이름 밝히길 거절했다. 처음 취재 요청 전화에도 그는 “맛있다고 할 만한 메뉴가 없어서 얘깃거리가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결론부터 내놓자면, 지나친 겸양이다.
버스에서 내려 평창동 주택가 가파른 언덕길을 5분 정도 올라가야 미술관에 닿는다. 조각가 김종영(1915∼1982)을 기려 2002년 세운 건물이다. 상설전시실 벽면 곳곳에 김종영의 작품 뒤로 그가 남긴 글귀를 새겼다.
“동서고금 통틀어 위대한 예술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헛된 노력’에 일생을 바친 이들이다.”
“조형 예술에서 형체가 명확해지려면 물체에 대한 철저한 관찰과 인식, 덧대인 살을 철두철미 제거하며 추궁하는 집요한 노력이 필요하다.”
작업실을 겸한 그의 집에서 가족들은 발뒤꿈치를 들고 조용히 움직였다고 한다. 모든 작품에 거두절미 그저 ‘작품(work)’이라는 제목을 일관되게 붙인 데서도 본질을 붙들어 파고든 집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대상의 형태를 모사해 재현하려 하지 않고 조각물 자체의 조형적 가치와 물성을 찾으려 했다. 경박함과 엄숙함을 아울러 배제하며 전개한 미술관 공간 곳곳의 시선처리 디테일이 김종영의 작품과 언어를 어색함 없이 받아낸다. 시건축 류재은 대표와 한철수 소장이 설계한 이 건물은 2003년 서울시건축상, 2004년 한국건축가협회상 특별상을 받았다.
오후 햇살 소담한 카페 창가에 앉아 겨울 한정 메뉴인 뱅쇼(데운 와인)와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뱅쇼는 계피 정향 오렌지 사과 배 꿀을 넣고 집에서 끓여 가져왔다. 다른 음식과 차 메뉴도 패션 디자이너 출신의 사장이 ‘집에서 해 먹는 그대로’다. 과일 주스는 시럽 없이 통째로 바로 짜서 따라 낸다. 빈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 옆자리에 방해되지 않도록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거나 혼자 앉아 묵묵히 책 읽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솔직히, 남에게 알려주기 싫은 공간이다.
기획전시실에서 8일까지 전윤조 작가의 초대전 ‘머리가 알지 못하는 마음’이 열린다. 지난해 제12회 김종영조각상을 받은 작가다. 면사(綿絲)로 얽어 만든 흑백의 인형이 저마다의 동작을 취한 채 우르르 몰려 있거나 공중에 매달려 있다. 작가는 “소통의 한계로 인한 고립감, 군중 사이에서 문득 느끼는 외로움을 묘사했다”고 했다. 형태를 다듬은 기본기가 단단하기에 그 너머의 것을 들여다보는 과정으로 무리 없이 이끌린다.
정말 맛있는 샌드위치는 먹는 이의 시선까지 빼앗지 않는다. 책 읽기 또는 상념에 계속 몰두하게 놔두면서 조용히 허기를 메워준다. 맛도 공간도 작품도, 고지식해 보일 만큼 본분에 충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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