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열린 대한불교조계종의 ‘종단 혁신과 백년대계를 위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大衆公事)’는 여러 모로 화제가 됐습니다.
종단 수장인 총무원장에서부터 젊은 불자까지 함께 참여한다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진행 방식도 새로웠습니다.
저도 그렇지만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회의만큼 괴로운 것은 없습니다. 조계종은 향후에 다룰 주요 의제를 정하면서 힐링, 도약, 용기 등 짧은 단어와 함께 요가, 일출, 연등회 사진 등을 차례로 보여주며 연상되는 단어를 적어내게 했습니다. 토론에 앞서 뇌를 활성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네요.
10명 안팎의 조별 모임은 대학 오리엔테이션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주제를 모은 종이를 계속 돌리면서 특정 항목에 표를 던지거나 조금씩 수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여기서 의견이 많이 나온 주제를 포스트잇에 써서 벽에 붙인 뒤 스티커 투표를 했습니다.
이런 말도 나왔습니다. “대중공사는 ‘절집 민주주의의 꽃’이죠. 하지만 어느 순간 퇴색했어요. 아무래도 선배의 말에 무게가 실리고, 큰 스님이 한 말씀 하면 모두 그대로 따르게 되죠. 이런 대중공사는 신선하네요.”
한국불교태고종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 총무원장인 도산 스님을 중심으로 한 집행부와 이에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맞서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총무원을 둘러싼 폭력 논란이 터져 나왔고, 경찰은 양측의 물리적 충돌을 막기 위해 병력을 배치한 상태입니다.
이전 집행부에서 누적된 수십억 원의 부채 처리 문제가 이번 갈등의 도화선이 됐습니다. 하지만 양측은 원만한 해법보다는 사회법과 물리력에 의지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2일 현 집행부와 비대위 측이 동시에 물러나자는 도산 스님의 조건부 사퇴안도 거부된 상태입니다.
종권(宗權)을 둘러싼 갈등은 조계종의 1994, 98년 종단 사태가 있습니다. 당시 스님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쇠파이프와 각목까지 휘두르는 상황이 벌어졌죠. 조계종의 종단 사태는 종단의 발전 시계를 수십 년 전으로 되돌린 퇴행적 사건입니다. 그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었다지만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질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졸리지 않았다’는 스님들의 호평을 받은 조계종 대중공사의 비밀은 뜻밖에 템플 스테이였습니다. 절집 문을 열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세간의 경험과 지혜를 수용한 거죠.
세상과 함께 호흡하지 않는 종교는 죽은 종교입니다. 세상의 눈과 부처의 법이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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