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남자’인지 궁금했다. 작품에 그려진 모습은 대한민국 남편들의 ‘공공의 적’, 때론 모두가 선망하는 ‘슈퍼맨 아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러 주부들이 “실제 자기 자신을 그대로 표현한 것인지, 다소 과장한 건지 인터뷰 때 물어봐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6일 서울 이태원에서 그를 만난지 10여분이 지나자 답이 나왔다.
그림 에세이 ‘딸바보가 그렸어’의 작가 김진형 씨(37)는 그림 속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100% 내 모습”이라며 쾌활하게 웃었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제일기획에서 광고를 제작하던 그는 지난해 초 딸 민솔 양(5)의 육아 과정을 담은 그림 에세이를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엄마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회당 최대 200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 내용은 최근 책으로 출간됐고 종합베스트셀러 18위에 올랐다.
김 씨는 “어느 날 아이를 보는 순간 지난 시간이 아쉬워 딸과의 추억을 그리기 시작했다”며 말을 이어갔다. “2013년 크리스마스에 엄청 술을 먹고 왔는데 딸이 ‘술 싫어요’라고 하더군요. 술이 확 깼어요. 다음날 아침 딸이 달려들어 목말을 태워주다 문득 자라버린 아이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딱 2시간씩만 딸을 위해 쓰자는 마음을 먹게 됐죠.”
‘딸바보…’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이유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아니라 ‘사실 눈에 넣으면 진짜 아파’라는 솔직한 심정으로 육아의 어려움과 아이에 대한 사랑을 리얼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육아가 쉽지 않잖아요. 야근하고 들어오면 애는 울고 있고 아내는 육아에 지쳐 우울증 기미도 보이고…. 아내가 막 짜증내도 참아야 하잖아요. 딸이 태어나서 1년 동안 저도 스트레스를 받아 원형 탈모증이 생겼어요. 그런데 지나고 나니 즐거운 추억이더군요. 아내가 ‘까라면 까는 게 좋다’고 봐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죠.(웃음)”
공감하면서도 그가 남편들의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블로그 연재 때 악플도 많이 달렸다고 한다.
“제가 슈퍼맨이 돼 육아에 지친 아내를 안고 하늘을 나는 ‘그녀의 하루’ 편을 게재하자 엄마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어요. 많은 엄마들이 남편들 페이스북에 태그하고 ‘내 슈퍼맨은 어디 갔나’며 항의했다고 해요. 그때부터 ‘에라. 이 X신. 남자 놈이 왜 이렇게 사냐’ ‘여자에게 왜 잡혀 사냐’ 등 악플이 달리더군요.”
그럼에도 그는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란 점을 강조하고 싶단다. “아이가 자랄 때 부모도 성장합니다. 그림을 그려야 하니 딸을 더 자주 관찰하고…. 욕도 잘했는데 말도 조심하게 되고, 술도 줄이고 담배도 끊었더니 배가 들어갔습니다.”
밖에서는 돈 잘 버는 능력 있는 남자, 집안에서는 가사를 분담하고 아이를 사랑하는 남편, 즉 ‘슈퍼맨 아빠’를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부담스럽진 않을까?
“육아에 정답은 없어요. 슈퍼맨이 아니라 주말에 누워만 있는 ‘소파맨’이라도 누워 다리로 아이를 비행기 태워주면서 얼마든지 자신만의 육아로 아이를 사랑할 수 있어요.”
인터뷰 말미 ‘딸이 남자친구를 더 좋아하는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묻자 표정이 굳어졌다. “제일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날이에요. 어제는 딸이 유치원에 있는 한 남자아이가 좋아졌다고 하더군요. 욕이 나올 뻔 했어요. 남는 건 결국 아내라는 생각을 요즘 뼈저리게 합니다. 결국 ‘아내 바보’가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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