想象, 인간과 자연성의 복원을 꿈꾸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0일 03시 00분


설치작가 양혜규 3번째 국내展

놋쇠 도금 방울을 재료로 만든 ‘소리 나는 인물들’ 앞에 앉은 양혜규 작가. 독일 바우하우스 작가 오스카어 슐레머의 1922년 작 ‘삼부작 발레’의 재해석을 시도했다. 리움 제공
놋쇠 도금 방울을 재료로 만든 ‘소리 나는 인물들’ 앞에 앉은 양혜규 작가. 독일 바우하우스 작가 오스카어 슐레머의 1922년 작 ‘삼부작 발레’의 재해석을 시도했다. 리움 제공
‘코끼리’에 대한 기억을 한꺼번에 끌어모아 떠올려 보자.

유약함과 강인함의 이미지가 중첩된다. 대개는 평온히 풀을 뜯지만 때로 성나 돌진하면 걷잡을 수 없는 동물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성공한 작가로 지칭된다”고 자인한 설치작가 양혜규 씨(44)는 12일부터 5월 10일까지 서울 용산구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는 3번째 국내 개인전 주제를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로 내걸었다. 모티브는 조지 오웰의 수필 ‘코끼리를 쏘다’와 로맹 가리의 소설 ‘하늘의 뿌리’다.

9일 열린 간담회에서 양 씨는 “40대 작가가 다루기에 큰 얘기임을 잘 알고 있다. 작품에 말을 보태다 보면 오류를 범하기 쉽다”고 했다. 그의 언변에는 수식의 낭비가 없다. 대화를 원하면서도 자제하려는 기색이 보였다. 일상의 사물에 의미를 부여해 내놓는 설치작품은 허허로운 장난질 독백으로 외면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에 대한 양 씨의 방어기제는 아마 두 가지다. 세계무대에서의 명성, 그리고 관람객의 호기심을 얻길 원하는 소통의 욕망.

이미 봤던 블라인드나 옷걸이 외에 새로 주목할 소재는 짚, 탁자, 의자다. 폴리염화비닐(PVC) 인조 짚으로 세계 각지의 옛 건축물과 토템 조형을 짜 올렸다. 그 뒤편 ‘VIP 학생회’는 “사회 주요 인사라 불리는 36명에게서 빌려 온” 의자 65개와 탁자 10개를 배열한 작품이다. 대여자 의향을 반영해 몇몇에는 ‘앉지 마시오’ 표지를 붙였다. 양 씨는 “그런 표지 역시 사회가 가진 관계맺음의 방식을 보여준다. 머리 아픈 주제를 피하는 것이 보편적 정서로 자리 잡은 사회지만, 나까지 그 흐름을 따를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다지 머리 아프진 않다. 사회 시스템을 겨눈 듯한 문제의식의 윤곽은 ‘동 세대의 누구보다 명성 높은 작가가 대기업 미술관 품 안에서 선보이는 전시’ 프레임을 둘러 필연적으로 흐릿해져 있다. 그 역시 작가가 의도적으로 형성한 모호함으로 이해할지 아니면 스스로도 미처 결론 맺지 못한 고민을 늘어놓은 것으로 볼지는 관객 몫이다. 차를 가져왔다면 주차장 계단기둥 아래 놓인 젓갈, 동치미, 마늘장아찌 단지를 눈여겨보길. 아파트단지 폐기물수거함 풍경 같지만 ‘바람에는 말이 없다’는 제목의 작품이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설치작가 양혜규#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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