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식도락]소소한 추억과 담백한 요리의 만남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1일 03시 00분


<15>갤러리로얄 ‘잃어버린 시간을…’전
카페로얄의 버터소스 광어구이

박상혁의 오일파스텔화 ‘Star-I Wish’(위 사진)와 갤러리로얄 레스토랑의 버터소스 광어구이.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박상혁의 오일파스텔화 ‘Star-I Wish’(위 사진)와 갤러리로얄 레스토랑의 버터소스 광어구이.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여행길 몇 밤 머물기로 한 숙소 주방에 가스레인지가 없으면 난감해진다. ‘불 맛’ 더한 요리는커녕 라면만 끓여 먹고 치울 게 뻔한데도 불꽃 없는 전기레인지는 어째서인지 음식 해먹을 기분을 돋우지 못한다. 레스토랑 주방에 가스불이 없다면 어떨까. 한 요리사는 “건강에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그을음 냄새 선호하는 손님들은 구이 음식에 풍미가 없다고 불평할 거다. 바닥이 납작하지 않은 팬을 쓰지 못하니까 구이를 하면서 재료를 휘딱휘딱 뒤집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로 갤러리로얄 1층 레스토랑 주방에는 가스불이 없다. 일부러 쓰지 않으려 한 건 아니다. 건축가 민현식 씨가 설계해 2007년 완공한 이 건물은 욕실용품 업체 로얄&컴퍼니의 사옥이다. 건물을 계획할 때는 고려하지 않은 갤러리, 레스토랑, 카페 시설을 준공 1년 뒤 추가하면서 내부 공간을 개조했다. 그러나 애초에 사무용 공간으로 마련된 까닭에 업장용 가스 설비를 덧붙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개점 멤버인 이덕권 셰프(36)는 조리시설의 제약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빚어낼 수 있는 차별성에 집중했다.

“인덕션레인지(고주파 자기장으로 자성을 가진 조리기구에 열을 발생시키는 전기레인지)를 설치하러 온 기사들이 오히려 ‘이걸로 레스토랑 음식 조리가 가능하겠느냐’며 고개를 갸웃했죠. 하지만 화력의 한계는 주물 팬을 충분히 예열해 쓰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풍미는 ‘불 맛’만 있는 게 아니고요.”

토마토와 감자를 곁들인 광어구이는 요리 외양을 좀 더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인덕션레인지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메뉴다. 진공 밀폐 포장한 재료를 섭씨 60도 정도의 물에 담가 20∼25분간 서서히 데워 익히는 수비드(sous-vide) 가공을 한 뒤 저민 마늘 섞은 정제버터 소스를 여러 번 덧바르며 팬에 구워 낸다.

대개의 레스토랑에서 생선구이 재료는 농어다. 이 셰프가 매출이익이 농어보다 낮은 광어를 택한 까닭 역시 인덕션레인지. 농어 특유의 흙냄새를 ‘불 맛’으로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뒷맛 깔끔한 광어를 택한 거다. 샐러드에는 잡풀을 숙성시켜 짜낸 산야초(山野草) 원액 드레싱을 얹는다. 매실 원액과 비슷한 느낌의 시큼한 맛을 내면서 당도는 낮아 깔끔한 마무리를 돕는다.

레스토랑 위층 갤러리에서는 24일까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기획전이 열린다. 캐릭터 피겨나 애니메이션 이미지를 통해 만화책 뒤적이던 오래전 기억을 살짝 건드리는 작가 5명의 작품을 모았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문득 맛본 홍차와 마들렌처럼 잊었던 기억을 송두리째 소환할 정도로 파괴력 있는 전시는 아니다. 아스파라거스 위에 기교 없이 벌거벗기듯 올린 광어구이처럼 특별한 감흥 없이 담백하다. 3개 층을 관통하는 보이드(void·수직으로 뚫린 공간) 벽면에 박상혁 씨가 그린 검은 하늘과 별이 걸려 있다.

특별하지 않으면 좀 어떤가. 예고 없이 눈이 쏟아졌고, 기억할 것이 없어 좋았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갤러리로얄#카페로얄#버터소스 광어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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