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Fashion]그녀의 취향과 당신의 판타지… 그 미묘한 간극을 말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12일 03시 00분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란제리란?

여성의 속옷은 인류의 공통 관심이다. 딸기처럼 싱그럽고 쿠키처럼 달콤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식탁 위에 정성스레 차려진 음식을 봤을 때, 빨리 먹고 싶은 마음과 잘 정돈된 세팅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공존하듯 여성 속옷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겼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촬영협조: 아장 프로보카퇴르
여성의 속옷은 인류의 공통 관심이다. 딸기처럼 싱그럽고 쿠키처럼 달콤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식탁 위에 정성스레 차려진 음식을 봤을 때, 빨리 먹고 싶은 마음과 잘 정돈된 세팅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공존하듯 여성 속옷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겼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촬영협조: 아장 프로보카퇴르
“뭘 찾으세요?” “흰색 속옷 세트요, 선물하려고.” “아, 브래지어 사이즈 아세요?” “잘 몰라요.”

점원은 애인의 가슴을 생각하고 손으로 둥근 구 형태를 만들어 보라고 했다.

“아, 애인의 가슴이 볼륨감이 있군요. 요즘엔 가터벨트도 함께 선물하는데 한번 보시겠어요?”

그는 흰색 브래지어와 팬티, 가터벨트를 사서 속옷 가게를 나섰다.

남자1의 이야기다. 이 기사는 여성 속옷에 대한 남녀의 다양한 생각을 토대로 구성했다.

<이 기사의 등장 인물>

남자1: 여성의 흰색 가터벨트를 좋아하는 남자

남자2: 여성의 살구색 시스루 팬티를 좋아하는 남자

여자1: 리본이 달린 팬티를 입는 여자

여자2: 곰돌이가 그려진 브래지어를 입는 여자

아장 프로보카퇴르 제공
아장 프로보카퇴르 제공
사이즈, 그 미묘한 신경전

-남자1: 신기하게도 손으로 어림잡은 사이즈가 맞더라고요.

-남자2: 사이즈도 모르고 속옷을 사러 갔단 말이에요?

-여자1: 그걸 아는 게 이상한 거 아니에요?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여자2: 저는 남자친구에게 속옷 선물을 두 번 정도 받아봤어요. 신기하게도 사이즈를 정확히 알고 있더라고요. 어떻게 알았는지 물으니 ‘다 아는 방법이 있어’라고 말하면서 웃던데, 내 남자친구도 저렇게 손 펼쳐가며 알아낸 걸까요.

-남2: 브래지어 뒤에 적혀 있잖아요.

-남1: 그걸 어떻게 봐요? 보여 달라 그래요?

-남2: 애인이 샤워하러 간 사이에 보면 되잖아요.

-여2: 그걸 몰래 본다는 말이에요? 정말 별로네요. 방금 전까지 날 안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사람이, 사랑의 여운을 즐길 시간에 내 사이즈나 훔쳐보고 있단 말인가.

-여1: 나한테 직접 물어보는 것보다야 스스로 알아내는 게 낫죠. 사이즈 잘못 사와서 바꾸러 가는 것도 번거롭고, 서로 덜 민망하고. 제가 선물을 받았을 때는 컵 사이즈는 맞혔는데 둘레를 크게 사왔더라고요. 저는 80인데 85를 주더라고. 내가 그렇게 뚱뚱해 보였나.

-남2: 그 친구가 잘못했네! 정확한 사이즈를 몰랐다면 안전한 길을 택했어야지. ‘둘레는 한 치수 작게, 컵은 한 치수 크게.’ 그게 애인의 기분을 좋게 하는 방법이죠.

-여2: 단순히 기분만은 아니에요. 컵은 크게 사는 게 딱 맞춰 사는 것보다 안전해요. 남는 컵은 채울 수 있어도 남는 살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여1: 정말 생각이 다양하네요. 나만 알고 남은 모르는,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 이게 여자 속옷인 것 같아요.

파란색과 레몬빛 노란색이 조화를 이룬 ‘셀레나’(왼쪽). 활짝 핀 꽃을 형상화한 무늬가 강렬한 느낌을 주는 ‘칼리’.
파란색과 레몬빛 노란색이 조화를 이룬 ‘셀레나’(왼쪽). 활짝 핀 꽃을 형상화한 무늬가 강렬한 느낌을 주는 ‘칼리’.
실용과 파격 그리고 소유욕

-여2: 정말 천차만별인 건 속옷 그 자체예요. 단색의 단순한 디자인부터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속옷, 그리고 시스루까지. ‘우베르’라고 불리는, 아랫부분이 막혀 있지 않은 팬티도 있죠. 기존의 코르셋에서 기능성은 줄이고 노출은 늘린 것도 있어요. 상상력을 자극하는 가터벨트도 있고. 속옷보다 더 다양한 건 속옷에 대한 생각이죠.

-여1: 맞아요.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도 상반되는 생각들이 공존하니까요. 실용과 파격이 대립하고…. 남자들이 여자 속옷을 볼 때는 어때요?

-남2: 실용과 파격? 그런 거 잘 몰라요. 오직 내 취향이죠. 내가 애인에게 입히고 싶은 거, 내가 보고 싶은 거.

-남1: 내가 사준 속옷을 입고 있는 애인을 보는 건 일종의 소유욕이죠. 여자가 자기가 사준 넥타이를 맨 애인을 보는 것과 비슷할 것 같아요. 내 거니까, 내가 싫어하는 거는 입히고 싶지 않아요. 이를테면 살구색 속옷, 너무 성의 없는 느낌이랄까.

-남2: 저는 살구색 좋던데요. 입어도 벗은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는 시스루가 참 좋죠.

-남1: 시스루는 저도 격하게 좋아해요.

-여2: 너무 속옷을 성적 판타지의 대상으로만 보는 거 아닌가요.

-여1: 사실 여자도 다르지 않아요. 저는 일본에 놀러갈 때마다 파격적 디자인의 속옷을 사요. 브래지어 컵이 그물처럼 돼있기도 하고, 팬티 앞부분이 3분의 2 정도가 시스루인 것도 있죠. 상상해 보세요. 전부 시스루인 것보다 더 야해요.

-여2: 여자 속옷은 수다소재이기도 하고 놀이의 대상이기도 해요. 여자들끼리는 자기가 입기는 민망한 디자인의 속옷을 친구에게는 선물해요. 결국 그렇게 주고받다 보면 야한 속옷 2, 3벌씩은 갖게 되죠.

짙은 바이올렛 색상의 실크 가운인 ‘타냐 기모노’(왼쪽). 몸매를 탄탄하게 잡아주고 가슴과 허리에 볼륨감을 연출해주는 ‘윌로우 코르셋’.
짙은 바이올렛 색상의 실크 가운인 ‘타냐 기모노’(왼쪽). 몸매를 탄탄하게 잡아주고 가슴과 허리에 볼륨감을 연출해주는 ‘윌로우 코르셋’.
속옷… 마르지 않는 상상력의 샘물

-남2: 결국 속옷이 누군가에게 보일 수 있다는 상상을 한다는 얘기죠. 여자들이 브래지어와 팬티 세트를 고집하는 것도 결국 보여주는 걸 염두에 두기 때문 아닐까요. 참 분위기 좋았던 날이었는데 애인이 한사코 잠자리를 거부했던 적이 있어요. 나중에 ‘사실 그날 위아래 따로따로여서 보여주기 싫었다’고 하더라고요.

-여2: 근데 남자들에게만 보여주는 걸 신경 쓰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다른 여자에게 보여줄 때 더 신경을 쓰죠. 예를 들면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거나, 찜질방을 간다거나 그럴 때는 반드시 세트로 맞춰 입어요. 여자의 자존심이죠.

-남1: 화장은 하는 것만큼 지우는 게 중요한 것처럼 속옷은 벗을 때도 입을 때만큼 중요하지요. 솔직하게 얘기하면 브래지어 끈 풀 때 은근히 신경 쓰이거든요.

-여1: 공감해요. 너무 잘 풀어도 ‘얼마나 자주 해봤기에…’란 생각 들고, 못 풀고 낑낑대면 민망하고. 앞에서 풀게 만든 브래지어도 나쁘지 않아요. 좀 더 격식을 갖추는 것 같으니까요.

-여2: 좀 민망하지 않을까요. 얼굴을 마주 보게 될 텐데.

-여1: 서로 잠자리가 처음이 아니라면 좋을 수도 있죠. 뭔가 정서적 교감을 하는 느낌이잖아요.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를 보면 정우성이 손예진의 샤워가운을 앞에서 푸는 장면이 있죠. 무척 다정해 보였어요.

-여2: 속옷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지만, 사실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그 안에 있는 ‘나 자신’이니까. 남녀 간에 서로 속옷을 보는 사이라면 많이 사랑하는 사이일 텐데 어떤 속옷을 입든 중요할까요. ‘사랑하는 그대’만 있으면 상관없지 않을까요.

-남1: 많이 사랑하니까 중요하죠. 사랑하는 그대의 모든 것이 중요하니까. 그대의 손짓 눈길, 그대 몸에 닿은 작은 실오라기 하나까지도.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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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추천 많은 댓글

  • 2015-02-12 15:14:55

    물론 환상이있지..단, 전제조건이있다면 이쁘고 몸매가 좋아야한다는게 함정이지..ㅋㅋㅋㅋ

  • 2015-02-12 16:05:48

    볼륨이 환상적으로 잡힌 여성의 블랙 브래지어와 빤쓰는 뭇 신사들의 두뇌를 마비시키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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