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속옷은 인류의 공통 관심이다. 딸기처럼 싱그럽고 쿠키처럼 달콤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식탁 위에 정성스레 차려진 음식을 봤을 때, 빨리 먹고 싶은 마음과 잘 정돈된 세팅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공존하듯 여성 속옷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겼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촬영협조: 아장 프로보카퇴르
“아, 애인의 가슴이 볼륨감이 있군요. 요즘엔 가터벨트도 함께 선물하는데 한번 보시겠어요?”
그는 흰색 브래지어와 팬티, 가터벨트를 사서 속옷 가게를 나섰다.
남자1의 이야기다. 이 기사는 여성 속옷에 대한 남녀의 다양한 생각을 토대로 구성했다.
<이 기사의 등장 인물>
남자1: 여성의 흰색 가터벨트를 좋아하는 남자
남자2: 여성의 살구색 시스루 팬티를 좋아하는 남자
여자1: 리본이 달린 팬티를 입는 여자
여자2: 곰돌이가 그려진 브래지어를 입는 여자
아장 프로보카퇴르 제공사이즈, 그 미묘한 신경전
-남자1: 신기하게도 손으로 어림잡은 사이즈가 맞더라고요.
-남자2: 사이즈도 모르고 속옷을 사러 갔단 말이에요?
-여자1: 그걸 아는 게 이상한 거 아니에요?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여자2: 저는 남자친구에게 속옷 선물을 두 번 정도 받아봤어요. 신기하게도 사이즈를 정확히 알고 있더라고요. 어떻게 알았는지 물으니 ‘다 아는 방법이 있어’라고 말하면서 웃던데, 내 남자친구도 저렇게 손 펼쳐가며 알아낸 걸까요.
-남2: 브래지어 뒤에 적혀 있잖아요.
-남1: 그걸 어떻게 봐요? 보여 달라 그래요?
-남2: 애인이 샤워하러 간 사이에 보면 되잖아요.
-여2: 그걸 몰래 본다는 말이에요? 정말 별로네요. 방금 전까지 날 안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사람이, 사랑의 여운을 즐길 시간에 내 사이즈나 훔쳐보고 있단 말인가.
-여1: 나한테 직접 물어보는 것보다야 스스로 알아내는 게 낫죠. 사이즈 잘못 사와서 바꾸러 가는 것도 번거롭고, 서로 덜 민망하고. 제가 선물을 받았을 때는 컵 사이즈는 맞혔는데 둘레를 크게 사왔더라고요. 저는 80인데 85를 주더라고. 내가 그렇게 뚱뚱해 보였나.
-남2: 그 친구가 잘못했네! 정확한 사이즈를 몰랐다면 안전한 길을 택했어야지. ‘둘레는 한 치수 작게, 컵은 한 치수 크게.’ 그게 애인의 기분을 좋게 하는 방법이죠.
-여2: 단순히 기분만은 아니에요. 컵은 크게 사는 게 딱 맞춰 사는 것보다 안전해요. 남는 컵은 채울 수 있어도 남는 살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여1: 정말 생각이 다양하네요. 나만 알고 남은 모르는,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 이게 여자 속옷인 것 같아요.
파란색과 레몬빛 노란색이 조화를 이룬 ‘셀레나’(왼쪽). 활짝 핀 꽃을 형상화한 무늬가 강렬한 느낌을 주는 ‘칼리’. 실용과 파격 그리고 소유욕
-여2: 정말 천차만별인 건 속옷 그 자체예요. 단색의 단순한 디자인부터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속옷, 그리고 시스루까지. ‘우베르’라고 불리는, 아랫부분이 막혀 있지 않은 팬티도 있죠. 기존의 코르셋에서 기능성은 줄이고 노출은 늘린 것도 있어요. 상상력을 자극하는 가터벨트도 있고. 속옷보다 더 다양한 건 속옷에 대한 생각이죠.
-여1: 맞아요.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도 상반되는 생각들이 공존하니까요. 실용과 파격이 대립하고…. 남자들이 여자 속옷을 볼 때는 어때요?
-남2: 실용과 파격? 그런 거 잘 몰라요. 오직 내 취향이죠. 내가 애인에게 입히고 싶은 거, 내가 보고 싶은 거.
-남1: 내가 사준 속옷을 입고 있는 애인을 보는 건 일종의 소유욕이죠. 여자가 자기가 사준 넥타이를 맨 애인을 보는 것과 비슷할 것 같아요. 내 거니까, 내가 싫어하는 거는 입히고 싶지 않아요. 이를테면 살구색 속옷, 너무 성의 없는 느낌이랄까.
-남2: 저는 살구색 좋던데요. 입어도 벗은 것 같고. 그런 의미에서는 시스루가 참 좋죠.
-남1: 시스루는 저도 격하게 좋아해요.
-여2: 너무 속옷을 성적 판타지의 대상으로만 보는 거 아닌가요.
-여1: 사실 여자도 다르지 않아요. 저는 일본에 놀러갈 때마다 파격적 디자인의 속옷을 사요. 브래지어 컵이 그물처럼 돼있기도 하고, 팬티 앞부분이 3분의 2 정도가 시스루인 것도 있죠. 상상해 보세요. 전부 시스루인 것보다 더 야해요.
-여2: 여자 속옷은 수다소재이기도 하고 놀이의 대상이기도 해요. 여자들끼리는 자기가 입기는 민망한 디자인의 속옷을 친구에게는 선물해요. 결국 그렇게 주고받다 보면 야한 속옷 2, 3벌씩은 갖게 되죠.
-남2: 결국 속옷이 누군가에게 보일 수 있다는 상상을 한다는 얘기죠. 여자들이 브래지어와 팬티 세트를 고집하는 것도 결국 보여주는 걸 염두에 두기 때문 아닐까요. 참 분위기 좋았던 날이었는데 애인이 한사코 잠자리를 거부했던 적이 있어요. 나중에 ‘사실 그날 위아래 따로따로여서 보여주기 싫었다’고 하더라고요.
-여2: 근데 남자들에게만 보여주는 걸 신경 쓰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다른 여자에게 보여줄 때 더 신경을 쓰죠. 예를 들면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거나, 찜질방을 간다거나 그럴 때는 반드시 세트로 맞춰 입어요. 여자의 자존심이죠.
-남1: 화장은 하는 것만큼 지우는 게 중요한 것처럼 속옷은 벗을 때도 입을 때만큼 중요하지요. 솔직하게 얘기하면 브래지어 끈 풀 때 은근히 신경 쓰이거든요.
-여1: 공감해요. 너무 잘 풀어도 ‘얼마나 자주 해봤기에…’란 생각 들고, 못 풀고 낑낑대면 민망하고. 앞에서 풀게 만든 브래지어도 나쁘지 않아요. 좀 더 격식을 갖추는 것 같으니까요.
-여2: 좀 민망하지 않을까요. 얼굴을 마주 보게 될 텐데.
-여1: 서로 잠자리가 처음이 아니라면 좋을 수도 있죠. 뭔가 정서적 교감을 하는 느낌이잖아요.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를 보면 정우성이 손예진의 샤워가운을 앞에서 푸는 장면이 있죠. 무척 다정해 보였어요.
-여2: 속옷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지만, 사실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그 안에 있는 ‘나 자신’이니까. 남녀 간에 서로 속옷을 보는 사이라면 많이 사랑하는 사이일 텐데 어떤 속옷을 입든 중요할까요. ‘사랑하는 그대’만 있으면 상관없지 않을까요.
-남1: 많이 사랑하니까 중요하죠. 사랑하는 그대의 모든 것이 중요하니까. 그대의 손짓 눈길, 그대 몸에 닿은 작은 실오라기 하나까지도.
댓글 2
추천 많은 댓글
2015-02-12 15:14:55
물론 환상이있지..단, 전제조건이있다면 이쁘고 몸매가 좋아야한다는게 함정이지..ㅋㅋㅋㅋ
2015-02-12 16:05:48
볼륨이 환상적으로 잡힌 여성의 블랙 브래지어와 빤쓰는 뭇 신사들의 두뇌를 마비시키곤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