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첫 페이지에 화가 폴 세잔과 피카소의 그림이 나온다. 유전학을 다룬 과학서인데도 말이다. 다음 페이지에도 클로드 모네의 그림이 펼쳐진다. 망막에 자극이 생기면 뉴런(자극과 흥분을 전달하는 신경계 단위)을 통해 뇌에 신호가 가고 판단과 생각, 나아가 창의성이 이뤄지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영국의 식물분자 유전학자인 저자는 나아가 단세포부터 시작한 생명체가 진화를 거듭해 사회, 나아가 문화와 문명을 만드는 과정을 관통하는 ‘원리’가 무엇이냐는 의문을 던진다. 생명이 생성되고 번식하고 복잡한 문명을 탄생시키기까지, 어떻게 스스로 전환하는지를 통합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인 셈이다.
지구 위 생물이 단세포를 넘어 다세포로 진화하기 시작한 것은 약 10억 년 전. 다세포생물은 새로운 환경과 관계를 맺을 뇌가 없었다. 진화를 겪어 신경경로를 연결해 뇌가 생기고 나서야 환경을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됐다. 이후 수많은 세대를 걸쳐 생식과 번식이 이뤄졌고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뇌 안의 신경연결의 변형(학습)이 일어났다. 학습은 사회, 문화, 문명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진화-발달-학습-문화적 변화’라는 각 단계의 연결고리로 ‘상호작용’과 ‘관계’란 키워드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얼음이 녹는 것과 물이 끓는 것은 여러 면에서 다른 현상이지만 에너지에 의한 분자 간 상호작용이라는 유사점을 찾을 수 있는 것과 같다는 논리다. 집단 변이, 지속성, 강화, 경쟁, 조합, 협동, 반복이라는 일곱 가지 단계에서 서로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면서 단세포가 점차 진화해 문화까지 이루게 됐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인간의 창조성, 권력 투쟁, 경제 성장, 환경 대응도 이 같은 원리를 토대로 보면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고 이 책은 설명한다. 라스코 동굴벽화 확산 과정을 DNA 복제에, 민달팽이의 뉴런, 스냅스 작동원리를 습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비교하는 등 세포 진화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한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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