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욕망, 비열한 일상… 묵직하게 남는 불편함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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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들뜬 마음 정리에 꼭 맞는 저예산 한국영화 2편 잇단 개봉

1억 원짜리 영화 ‘조류인간’ “이룰 수 없는 꿈들을 이뤘어요. 그래서 알았죠
꿈이라는 것을… 난, 새가 되고 싶어요” 카라멜 제공
1억 원짜리 영화 ‘조류인간’ “이룰 수 없는 꿈들을 이뤘어요. 그래서 알았죠 꿈이라는 것을… 난, 새가 되고 싶어요” 카라멜 제공
《 ‘개가 되어버린 사내들 vs 새가 되고픈 여인네들.’ 설의 끝자락. 북적거리던 연휴가 마무리되면 마음도 정리가 필요하다. 이럴 땐 시끌시끌한 영화보다 잔잔하되 무게감을 지닌 영화가 딱. 적은 예산이지만 탄탄한 짜임새를 갖춘 한국 영화 2편이 관객을 찾아온다. 26일 개봉하는 ‘조류인간’과 다음 달 5일 선뵈는 ‘개: dog eat dog’는 각각 순제작비 1억 원과 5500만 원을 들인 작품이다. 많게는 수백억 원씩 들이는 대작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허나 넘치는 에너지는 남부럽지 않다. 뭣보다 독립영화다운 짙은 사회적 현실이 배어있어 한 입 깨물면 깊은 맛이 우러난다. 》


삶은 비리도록 슬픈 꿈의 한 자락


“꿈을 꿨어요. 꿈에서 이룰 수 없는 많은 꿈들이 이뤄졌어요. 그래서 알았어요. 꿈이란 걸.”(‘조류인간’에서 소연의 대사)

소설가 정석(김정석)은 집필도 중단한 채 세상을 떠도는 방랑자. 까칠하고 사회성도 부족하지만 실은 15년 전 행방이 묘연해진 아내를 찾고 있다. 홀연히 나타난 소연(소이)이란 여인은 부인을 안다며 길동무를 자처하나 왠지 의심스럽다. 어느 날, 자기처럼 영문도 모른 채 사라진 이들을 찾는다는 실종자 가족들이 진실을 찾을 단서를 제공하는데….

영화 ‘조류인간’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은 뒤 러시아 모스크바국제영화제, 독일 함부르크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김기덕 감독의 시나리오로 주목받았던 2013년 ‘배우는 배우다’를 연출한 신연식 감독의 신작이다. 소규모 영화지만 김정석 소이 정한비 등 낯익은 얼굴들이 친숙함을 더했다.

눈치 빠른 관객은 금방 알아채겠지만 이 영화는 제목에 사건의 단초가 들어있다. 실종자들은 ‘진짜로’ 새가 되려고 수술을 받았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이다. 허나 이런 판타지적 요소는 딱히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왜 새가 되고 싶었을까. 아니, 그들은 왜 인간이란 틀을 벗어나고 싶었을까.

영화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안개처럼 뿌옇던 진실은 자막이 올라간 뒤에도 모호하다. 허나 원래 삶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누구나 맘속에 뭔가를 담고 살지만, 그걸 꼭 꼬집어 얘기하긴 힘들다. 어쩌면 새가 되겠다는 욕망을 좇을 수 있다는 게 행복한 것일지도. 그 진실의 ‘눈빛’과 마주한 순간, 우린 새가 날아가 버린 허공을 멍하니 응시할 수밖에. 15세 이상 관람가.

5500만 원짜리 영화 ‘개: dog eat dog’ “정의? 사전에나 있는 것… 가해자의 시선이 알고 싶지, 그래서 담아냈어, 야비한 폭력의 민낯을” 어뮤즈 제공
5500만 원짜리 영화 ‘개: dog eat dog’ “정의? 사전에나 있는 것… 가해자의 시선이 알고 싶지, 그래서 담아냈어, 야비한 폭력의 민낯을” 어뮤즈 제공
시큼한 현실을 찢어발기는 악마의 일상

형신(김선빈) 일당은 돈이 된다면 뭐든지 하는 이들. 해외에서 한국인을 납치해 몸값을 뜯어내던 그들은 급기야 국내로 밀입국해 피해자와 가족들을 괴롭힌다. 같은 조직의 두진(박형준)도 우연히 터키 여행을 하다 새로운 먹잇감 준교(정준교)를 감금하고…. 해외에서 저지른 범죄라 증거 확보가 어려운 점을 악용해 맘껏 활개치고 다니는 그들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개: dog eat dog’는 2007년 무렵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필리핀 한인 납치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다. 당시 범인들은 필리핀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제물로 삼아 4년간 19건의 납치 및 강도 행각을 벌였다. 하지만 영화는 실제 사건 자체보다는 그 악행을 저질렀던 이들에게 주목했다.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의 시선을 따라갔다는 소리다.

카메라에 담긴 그들의 일상은 전율스럽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의 하루는 너무 덤덤해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평범한 직장생활이라도 하듯 타인을 괴롭히고 돈을 뜯는다. 진짜 현실에서 정의란 사전에나 존재하는 단어인 것처럼. 이를 극대화시키는 건 배우들의 연기다. 범죄 패거리 지훈(곽민호), 두진의 연기도 좋지만 우두머리 형신은 비열함의 화신이다. 이런 배우가 무명이라는 게 더 놀라울 정도다. 잔인한 장면은 많지 않으나 문득문득 소름이 돋아 불편할 수도 있다. 18세 이상 관람가.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조류인간#개#dog eat dog#저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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