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라이터’(writer)가 없는 게 아니라 좋은 에디터(editor)가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는 대충 설거지한 듯한 낡은 커피 잔을 건넸다. 무심한 듯한 행동과 달리 눈빛은 살아 있었다. 출판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장은수 전 민음사 대표(47)다.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라는 낯선 직함의 그를 만났다. 그의 출판 인생에서 민음사를 뺄 수 없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후 민음사에 입사해 편집장을 거쳐 2006년부터 민음사 대표 편집인을 지냈다. 그런 그가 지난해 중순 민음사를 갑자기 그만둔 것은 출판계의 화제였다.
그는 올해 초 이홍 전 웅진씽크빅 리더스북 대표, 이중호 미래출판전략연구소장 등 10여 명의 출판전문가들을 모아 ‘출판콘텐츠마케팅연구회’를 구성했다. 출판계가 어렵다는 이야기부터 꺼내 봤다.
“세계적인 현상이죠. 다만 미국이나 일본, 프랑스는 전자책 개발 등 그들 나름의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반면 국내에는 대응책이 미진합니다. 현장을 잘 아는 전문가들 위주로 연구회를 만든 이유예요. 기존 출판 단체 연구기관은 출판 정책이나 독서 진흥 방안을 주로 연구해 출판 현장과 산업 연구는 턱없이 부족했어요.”
작게는 베스트셀러 성공 요인, 크게는 출판사 성장 전략, 디지털 시대의 출판 산업 대안을 연구회를 통해 내놓겠다는 것이 그의 포부다. “책과 국내 독자를 연결하던 고리가 끊어졌어요. 북 콘서트를 열고, 저자 사인회 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책이나 출판과 관련된 이야기, 즉 담론이 생산되지 않고 있어요. 이광수의 ‘무정’은 잘 안 읽으면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많이 읽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국내 작품의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국내 작품을 둘러싼 담론이 없기 때문”이라며 “‘왜 문학작품을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등 책과 관련된 담론이 꾸준히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는 출판사를 그만둔 후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읽고 출판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 책은 빵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찾는다는 내용을 다뤘다. “한국에도 시골 빵집 많아요. 그런데도 일본 출판사 편집자들은 시골의 작은 사례를 통해 그토록 매력적인 이야기로 책으로 만들었죠. 반면 국내 출판사는 ‘편집력’이 소진된 상태입니다. 책 편집을 가르치는 대학 등 교육기관도 극히 드물어요. 현장에서 책 기획, 편집을 배우려면 5∼10년은 걸리는데 단기 성과에 치중해 편집자 육성이 안 되고 있는 겁니다.”
편집력의 부재는 해외 도서 번역 출판에 치우치는 악순환도 낳았다고 그는 비판했다.
“출간되는 전체 책 중 60% 이상은 번역서예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재계약을 두고 국내 출판사의 출혈 경쟁이 심했죠? 국내 저자를 관리하고 창조성이 고갈되지 않게 하는 것 역시 편집자의 역할이죠.”
장 대표는 예일대, 컬럼비아대 출판 스쿨의 편집자 교육을 예로 들며 “연구회를 통해 출판 콘퍼런스를 열어 편집자 교육의 중요성과 방향을 제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은 보건소에서 아이들에게 예방접종하면서 책을 나눠 줍니다. 보건소란 공간이 인간과 책이 만나는 접점으로 탈바꿈되는 거죠. 책과의 접촉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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