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키어가 설산 경사면을 힘차게 오르고 있다. 하얀 눈이 덮인 산을 스키를 타고 오르고, 눈발을 날리며 활강하는 산악 스키는 일반 스키 그리고 등산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날 것 그대로의 천연 놀이터에서 맘껏 자신의 의지를 발현하는 운동이 바로 산악 스키다.
뽀득뽀득. 발끝에 전해 오는 눈의 느낌이 참 좋다. 눈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장난기가 발동하는 걸 보면 ‘눈’이라는 단어에는 분명 동심을 자극하는 뭔가가 숨어 있는 모양이다. 나는 오늘 이 하얀 눈을 원 없이 밟아 볼 생각이다. 산과 들을 누비며. 네파아웃도어스쿨 시즌2, 그 여섯 번째 도전은 눈과 함께하는 산악 스키다.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밟아 본 게 얼마 만인지. 이곳은 눈의 고장 평창이다. 명성답게 산이며 들이며 눈길 닿는 곳 모두가 온통 눈이다. 사실 서울에서 강원도까지 오는 내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 눈 쌓인 산을 마음껏 헤집고 다닐 요량으로 떠나온 길인데,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은 눈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기 때문이다.
메마른 풍경은 횡계 나들목을 빠져나오면서 은백의 세상으로 바뀌었다. 어디 숨었다 불쑥 튀어나온 것도 아닐 텐데 나들목을 경계로 어찌 이리 다른 풍경이 펼쳐질 수 있는지. 하얀 눈을 뒤집어 쓴 산과 들이 푸근한 솜이불을 덮고 있는 아이처럼 평화로워 보인다.
식사를 마치고 찾은 곳은 알펜시아리조트 크로스컨트리 경기장. 기본 교육을 위해서다. 산악 스키는 ‘스키’와 ‘산’이 결합된 레포츠이기 때문에 교육은 필수다. 이를 위해 네파 홍보대사인 박경이 을지대 스포츠아웃도어학과 교수가 강사로 나섰다. 박 강사는 우리나라에 두 명밖에 없는 국제산악스키연맹 국제심판위원이기도 하다.
기본 교육은 장비 사용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됐다. 산악 스키용 장비는 알파인 스키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점이 꽤 많다. 특히 스키 플레이트 밑에 실(Seal)이라고 부르는 클라이밍용 스킨을 부착하는 게 가장 큰 차이. 한때 물개 가죽을 사용해 만들었던 실은 경사지를 오를 때 스키가 뒤로 밀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산악 스키의 핵심 장비다. 바인딩(스키 부츠와 플레이트를 부착시켜 주는 장치)은 잠금장치를 이용해 부츠의 뒤축을 스키 플레이트와 고정시키거나 분리시킬 수 있도록 돼 있다.
박 강사의 설명에 따라 장비를 착용하고 본격적인 실습에 나섰다. 우선 걷기. 산악 스키에서는 이를 스트라이딩이라 부른다. 스키를 11자 모양으로 나란히 둔 채 한 발씩 교차시켜 이동하는 기술이다. 뒷발에 힘을 주고 앞발을 길게 뻗으면 몸이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간다. 처음 몇 번은 발이 많이 들려 방향이 틀어지기도 했지만 곧 적응할 수 있었다. 방향 전환을 위한 킥턴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돌려고 하는 쪽 발을 먼저 회전시킨 뒤 뒷발을 당겨 다시 11자로 만들면 끝. 하지만 경사가 걱정이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실을 부착한 스키는 웬만한 경사에서도 뒤로 밀리지 않았다. 그 덕분에 야트막한 언덕은 스트라이딩으로도 얼마든지 오르고 내릴 수 있었다. 오르막뿐 아니라 내리막에서도 실은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그렇다고 실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급경사 구간에선 스키의 옆날로 오르는 사이드 스텝을 이용해야 한다. 경사를 오르는데 성공했으니 이젠 내려갈 차례. 산악 스키에서 다운힐은 잘 정비된 스키장에서와 많이 다르다. 아닌 게 아니라 스키 경력이 제법 오래된 참가자들도 10m가 채 안 되는 다운힐 구간에서 이리저리 넘어지기 일쑤였다. 산악 스키에서 다운힐이 어려운 건 눈의 깊이를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눈길을 걷다 발이 빠져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 이때 스스로 스키를 제어하지 못하면 바로 넘어질 수밖에 없다.
둘째 날, 오전 9시. 황병산(1407m)에 위치한 켄터키 목장으로 향했다. 마침내 어제 배운 기술을 실전에서 맘껏 펼쳐 볼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걱정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같은 눈밭이라곤 하지만 막상 날것으로의 산을 대하고 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울타리 없는 동물원에서 맹수와 마주한 느낌이 이럴까. 그래도 단호하게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던 건 넘어지고 엎어지며 몸으로 익힌 어제의 경험 덕분이다. 선두에 선 박 강사가 길을 내면 참가자들이 한 명씩 그 뒤를 따랐다. 배추밭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었다. 폭도 좁고 경사도 제법 가팔랐다. 거리도 꽤 멀어 몇 번이나 숨을 고른 뒤에야 농장 산책로와 이어진 능선에 오를 수 있었다. 이곳에서 반환점까지는 크게 오르거나 내려서는 일 없이 적당한 굴곡을 이루며 코스가 이어졌다. 조금 힘들다 싶으면 평지가 나왔고, 조금 지루하다 싶으면 내리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다 뜬금없이 굴곡 없는 인생은 참 재미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그건,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어 평지의 고마움을 알게 된 덕이리라. 오르막을 올라보지 않곤 절대로 평지의 고마움을 알 수 없다. 지금 내 앞엔 또 다른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 오르막을 오른다. 지친 다리 잠시 쉬어 갈 편안한 평지를 꿈꾸며. 그게 길이고, 그게 인생이다.
▼네파 홍보대사 박경이 강사가 전하는 초보 산악 스키 가이드▼
1. 적절한 복장을 갖추자
너무 두꺼운 옷보다는 얇은 옷 여러 벌 을 겹쳐 입는 게 좋다. 특히 다운재킷은 행동을 굼뜨게 하고 땀 배출이 잘 안 돼 산악 스키에는 적당하지 않다.
2. 장비관리는 철저히
실(Seal·경사를 오를 때 스키 플레이트 가 아래로 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플레이트 바닥에 부착하는 것)은 산악 스키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다. 실의 접 착력이 떨어지면 산행 자체가 불가하기 때문에 사용 후에는 반드시 물기를 제거 한 뒤 잘 접어서 보관해야 한다.
3. 바운딩 잠금장치 확인
부츠와 스키 플레이트를 연결하는 바운 딩 잠금장치에 늘 신경 써야 한다. 평지 나 언덕에서는 풀어 주고, 활강할 때는 다시 잠가야 안전하게 산악 스키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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