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스님들과 다담(茶談)을 나눌 때 듣게 되는 말입니다. 궁극적으로 무소유의 삶을 추구하는 게 수행자의 삶이고, 그렇다면 이른바 ‘절집 감투’는 연연할 가치가 없다는 거죠.
대한불교 조계종 제6대 종정인 성철 스님(1912∼1993)의 임기가 1991년 끝나자 이런 분 저런 분을 내세워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당시 갈등이 심해지는 가운데 일부 스님들이 화합을 위해 성철 스님의 재추대를 주장했죠. 성철 스님이 그대로 자리를 지켜 분란을 막자는 취지였습니다. 한사코 종정 자리를 고사하던 성철 스님은 결국 이 설득에 “언제든지 그만두겠다”는 단서를 달고 재추대를 수락했다고 합니다.
요즘 절집 분위기는 많이 다릅니다. 세속이나 다를 게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해인총림(해인사) 방장 선출이 그렇습니다. 현재 방장 후보로 해인사의 규율을 관장하는 유나(維那) 원각 스님과 원로인 서당(西堂) 대원 스님이 나선 상태입니다. 양측 추대위원회는 상대 스님의 방장 자격을 둘러싼 문제 제기와 함께 측근으로 알려진 스님들에 대한 의혹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세속을 연상시키는 이런 대립은 해인사의 전통에도 어긋납니다. 해인사는 1967년 성철 스님을 초대 방장으로 추대한 뒤 지금까지 한 번도 선거를 치르지 않고 추대 전통을 이어왔죠. 당시에도 해인사를 구성하는 여러 문중의 이견이 있었지만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이 전통을 지켜왔습니다.
동국대 총장 선출을 둘러싼 갈등도 최근 조계종의 고민입니다. 동국대 교수인 A 스님이 조계종 파견 이사 스님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총장 단일 후보로 추대됐습니다. 하지만 A 스님이 쓴 논문들의 표절 의혹이 제기돼 총장 선출 건은 표류하고 있고, 후임 이사장 선출을 둘러싼 논란은 법적 다툼으로 번질 조짐입니다.
닭 벼슬보다 못하다지만 그래도 누군가 해야 한다면 적임자는 누구일까요? “하려는 이가 아니라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를 시키라”는 절집 속설에 답이 있습니다. 방장과 총장, 이사장의 자격은 무엇보다 절집이나 사회에서 누구나 따를 수 있는 ‘어른’이어야 합니다. 세속과 다를 바 없는 다툼과 수의 대결에서 이겼다고 해서 그분이 바람 잘 날 없는 큰 나무를 포용할 수는 없습니다.
사심 없고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이를 찾아 추대하는 게 해법입니다. 그게 바로 세상을 향해 보여줄 수 있는 불교적 가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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