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케치]아침마다 넥타이 매는 장그래? 요즘 직장인은 안그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8일 03시 00분


사라지는 넥타이 부대

제일모직 직원들이 제안하는 캐주얼 출근 복장. 이지승 씨(34·왼쪽)는 이탈리아 스타일, 박종관 씨(34)는 모던한 스타일로 멋을 냈다. 이 씨는 ‘빨질레리’의 더블버튼 재킷과 정장 바지 형태의 테일러드 데님 바지, 박 씨는 ‘엠비오’의 어깨 패드가 없는 편안한 저지 소재 재킷과 흰색 데님 바지를 입었다. 이 씨는 “바지 길이는 경쾌하게 입을 땐 복사뼈를 덮을 정도로, 품격 입는 정장 차림을 할 땐 구두 뒤편의 반 정도를 덮게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제일모직 직원들이 제안하는 캐주얼 출근 복장. 이지승 씨(34·왼쪽)는 이탈리아 스타일, 박종관 씨(34)는 모던한 스타일로 멋을 냈다. 이 씨는 ‘빨질레리’의 더블버튼 재킷과 정장 바지 형태의 테일러드 데님 바지, 박 씨는 ‘엠비오’의 어깨 패드가 없는 편안한 저지 소재 재킷과 흰색 데님 바지를 입었다. 이 씨는 “바지 길이는 경쾌하게 입을 땐 복사뼈를 덮을 정도로, 품격 입는 정장 차림을 할 땐 구두 뒤편의 반 정도를 덮게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전자 대기업에 다니는 이종수 씨(31)는 평소 출근할 때 검정 계열 의상을 즐겨 입는다. 검정 양복에 검정 구두일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검은색 워커에 청바지, 지퍼가 달린 코트를 좋아한다. 양말이나 니트는 붉은색 등 튀는 색을 선택해 패션에 포인트를 준다. 서류가방은 들어본 지 오래다. 가죽으로 된 백팩을 멘다.

지난해 여름 회사에서 주말근무에 한해 ‘반바지 패션’이 허용됐다. 더운데 주말에는 편하게 와서 일하라는 취지였다.

이 씨는 “반바지와 잘 어울리는 ‘태슬 로퍼’(술이 달린 로퍼)를 신을 수 있는 기회라 신이 났다”며 “회사에서는 평소 셔츠는 갖춰 입을 것을 권하긴 한다. 하지만 엔지니어가 많은 부서나 20, 30대 젊은 직원들은 라운드 티셔츠도 즐겨 입는다. 일만 잘하면 된다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가 출근 첫날 아침에 한 일은 ‘거울 보며 넥타이 매기’였다. 하지만 요즘 넥타이를 맨 직장인은 흔하지 않다. 이 씨처럼 직장인들의 패션이 점점 자유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성 직장인의 패션 변화는 눈이 부실 정도다. 직장인을 가리키는 ‘넥타이 부대’ ‘화이트 칼라’라는 용어가 맞지 않게 됐다.

여의도에서도 줄어드는 ‘넥타이부대’

삼성패션연구소는 1998년부터 17년째 독특한 조사를 하고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하루 날을 정해 오전 8시∼9시 30분에 서울 시청역, 삼성역, 여의도 일대에 조사원을 파견한다. 이 조사원은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옷차림이 정장인지 캐주얼인지 세어보고, 사진 촬영을 한 뒤 이들의 가방, 신발, 재킷 형태 등을 분석한다.

정장과 캐주얼을 가르는 기준은 넥타이 착용 여부다. 2007년 까지 봄, 가을 두 번의 조사에서 정장과 캐주얼의 비중은 약 7 대 3 수준이었다. 10명 중 7명은 넥타이를 매고 출근한 것이다.

그런데 2008년부터 정장은 줄고 캐주얼 비중이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급기야 2011년에는 캐주얼이 정장을 제쳤다. 해마다 캐주얼 비중이 늘어나고 정장 비중이 줄어들면서 지난해 봄 조사(5월)에서는 정장과 캐주얼의 비중이 3 대 7, 가을 조사(10월)에서는 2.5 대 7.5가 됐다. 7년 만에 정장과 캐주얼의 비중이 역전된 것이다.

지역별 편차도 줄어들고 있다. 그동안 정보기술(IT) 기업이 많은 삼성역 인근은 캐주얼 비중이 월등히 높았지만 시청과 여의도 지역에서는 2013년만 해도 근소한 차이로 넥타이족이 더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조사에서는 금융업 종사자가 많은 여의도에서도 정장 비중이 43.8%로 캐주얼(56.2%)보다 낮아졌다.

나인경 삼성패션연구소 연구원은 “더운 날씨 탓에 여름에는 캐주얼을 입다가도 날이 싸늘해지면 넥타이를 매는 경향이 강했지만 지난해 말에는 가을 겨울에도 넥타이를 풀고 다양한 겉옷으로 스타일링하는 직장인이 늘었다”고 말했다.

‘캐주얼=창의력’ 방정식 강해졌다

점심시간 여의도 일대 식당가. 비슷한 옷차림의 직장인 무리 속에 흰색이나 푸른색 계열 긴팔 셔츠, 노타이(넥타이를 매지 않는 것), 슈트 색깔과 어울리는 구두를 신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현대카드·캐피탈 직원들이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스타일도 기업문화의 일부이기 때문에 ‘현대카드·캐피탈인(人)은 이렇다’라는 스타일 철학이 있다”며 “넥타이를 매지 않지만 긴팔 드레스셔츠를 입어야 하고, 슈트와 어울리지 않는 밝은 색상의 구두나 로퍼는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카드·캐피탈은 매년 신입사원 교육에서 어떻게 옷을 입는지 알려주는 스타일링 클래스를 진행한다. 2010년 말부터 매년 3번(봄 3주, 여름 4주, 겨울 3주)에 걸쳐 ‘캐주얼 위크’도 연다. 찢어진 청바지나 민소매만 아니면 된다. 자유롭게 자기 개성을 드러내며 마음껏 캐주얼 스타일을 입을 수 있다.

‘넥타이 부대’가 사라지는 배경에는 기업들의 사고방식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 대기업 최초로 CJ그룹이 1999년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제도를 도입한 이후 2000년대 후반부터 ‘입는 옷이 기업 문화에 영향을 준다’는 사고방식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은 미국발 스마트폰 혁명이 국내 시장을 뒤흔든 시기다. 2007년 아이폰이 세상에 나오고 구글 아마존 등이 부상하자 국내에서도 ‘창의력 극대화’가 가장 시급한 조직혁신 과제로 떠올랐다.

국내 전자 대기업들이 비즈니스 캐주얼을 도입한 시기도 이맘때다. ‘엘리트 직장인’ 이미지였던 삼성전자는 2008년 창의적인 조직문화 구축을 위해 비즈니스 캐주얼을 도입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주말과 공휴일에 한해 ‘반바지’ 패션을 허용하기도 했다.

앞서 미국의 비즈니스 캐주얼도 IT업계가 이끌었다. 뉴욕타임스는 1995년 2월 IBM의 캐주얼 정책을 소개하며 “IBM 임원들은 회사 유니폼이나 다름없던 ‘남자=어두운 색 슈트와 넥타이’ ‘여자=원피스 및 스커트’ 공식을 깨야 한다고 설파한다”며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느껴야 생각을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실리콘밸리의 백만장자 기업인들이 자주 미디어에 등장하면서 ‘캐주얼=창의력’ 이미지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넥타이 생산 줄고, 캐주얼 재킷 늘고

캐주얼을 선호하는 직장인이 늘면서 국내 패션산업 지형은 흔들리고 있다. 한 의류대기업 관계자는 “10년 전과 비교해 넥타이 생산량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은 2013년 하반기(7∼12월)에 넥타이 매장을 대폭 줄이고 그 자리에 남성용 지갑, 가방, 스마트폰 케이스 등을 파는 액세서리 매장을 넣었다. 2010년부터 5년 동안 넥타이 매출이 꾸준히 감소해왔기 때문이다.

정통 남성복 의류 브랜드도 변하고 있다. 정장보다 캐주얼 의류를 더 많이 판다. 제일모직의 남성복 브랜드 ‘갤럭시’는 캐주얼 의류를 매 시즌 약 20%씩 늘리고 있다. 이원일 갤럭시 상품기획담당(MD)은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멀티 웨어링 슈트’의 재킷은 다른 바지와 매치해도 잘 어울려 캐주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여름철에는 출근용 형형색색 반바지가 신사복 매장에 등장한다. 노타이 전용 셔츠, 저지 소재 재킷, 정장 모양(테일러드) 청바지 등 비즈니스 캐주얼 아이디어 경쟁도 치열하다.

한편 출근 복장이 자유로워지자 일부 기업은 ‘부작용’ 때문에 고민하기도 한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부터 남녀 직장인의 복장 규정을 다시 강화했다. 라운드 티셔츠나 찢어진 청바지를 입는 직원까지 등장하자 기업 이미지 차원에서 셔츠 및 재킷 착용을 권하기로 한 것. 신세계 관계자는 “넥타이를 매지 않고 비즈니스 캐주얼을 지키되 직장인으로서 깔끔하게 입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제일모직 상장기념식에 참석한 김봉영 리조트·건설부문 사장과 윤주화 패션부문 사장(왼쪽부터). 제일모직의 공동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두 사람은 모두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행사에 참석해 성공적인 상장을 기원했다. 제일모직 제공
지난해 말 제일모직 상장기념식에 참석한 김봉영 리조트·건설부문 사장과 윤주화 패션부문 사장(왼쪽부터). 제일모직의 공동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두 사람은 모두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행사에 참석해 성공적인 상장을 기원했다. 제일모직 제공
▼“주가 치솟아라” 상장식엔 빨간색… 영업사원이라면 친근감 주는 갈색

넥타이 색깔에 담긴 메시지


찾는 이는 줄었지만 여전히 강하다. 넥타이 얘기다.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는 아직 정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은 여전히 넥타이에 메시지를 담는다.

지난해 12월 1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한국거래소에서 제일모직 상장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윤주화 제일모직 사장과 임원들은 미리 맞춘 듯이 붉은색 넥타이를 맸다. 주가 그래프는 오름세일 때 붉은색을 띤다. 주가 상승을 기원하기 위해 윤 사장과 임원들은 붉은색 넥타이를 택한 것이다. 이날 제일모직의 상장 첫날 주가는 공모가의 두 배 이상으로 급등해 화제를 모았다.

오수민 삼성패션연구소 연구원은 “남성 정장에서 넥타이는 색이 지니는 상징성을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며 “장소와 미팅 상대에 따라 적당한 넥타이 색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주 매지 않아서 어색해진 넥타이. 꼭 필요할 때 적당한 색깔을 고를 수 있도록 삼성패션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넥타이 색에 따른 의미를 알아봤다.

△붉은색=파워

기업인들이 거래소에서 붉은색 넥타이를 매듯 세계적인 정치인들도 중요한 연설을 할 때 붉은색 넥타이를 맨다. 열정과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붉은색 넥타이를 맬 때는 연한 색상(미색)의 셔츠와 짙은 색상의 슈트를 입는 게 일반적이다.

△보라색=자신감


상대방의 기억에 남는 첫인상을 주고 싶은 비즈니스맨에게는 보라색처럼 전형적이지 않은 색상의 넥타이가 어울린다. 보라색은 전통적으로 왕족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부(富)를 상징하기도 한다. 오 연구원은 “금융가를 중심으로 보라색을 선호하는 넥타이족이 있다”고 설명했다.

△푸른색=안정감

언제 어디서든 무난하게 착용할 수 있는 넥타이의 색은 푸른색이다. 패턴이 있는 푸른색 타이는 전문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경영인들이 평소 자주 착용하는 아이템이다. 밝은 계열의 코발트나 로열블루 색상은 패션의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반면 남색에 가까운 어두운 계열 푸른색은 엄격하고 신뢰감을 주는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갈색=친근감

영업이나 서비스직처럼 사람을 많이 상대해야 하는 직업이라면 갈색 계열의 자연친화적인 색상이 알맞다. 편안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다만, 비슷한 색상의 셔츠에 착용하면 지루해 보인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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