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율을 최대 15%로 제한하는 새 도서정가제는 한동안 ‘제2의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소비자들은 “책값마저 올린다”고 비판했고, 정부는 “거품이 빠져 책 값이 내려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21일 시행된 새 도서정가제가 2일로 도입 100일을 맞았다. 그 사이 책값은 어떻게 변했을까?
●신간 가격은 4.2% 하락
문화체육관광부가 단통법 시행 후부터 올해 2월 25일 사이 발간된 신간 단행본(1만7347종)을 전수 조사한 결과 1권 당 평균 소비자가(정가)는 1만8648원으로 나타났다. 전년 같은 기간에 출간된 신간 평균(1만 9457원)보다 4.2% 하락했다. 평균 900원 가량 책값이 내린 셈이다. 아동 과학 자기계발 분야 책은 가격이 2.3~22.2% 내린 반면, 인문 소설 역사 분야 책은 1.8~20.8% 가량 상승했다(표 참조). 가격이 내린 책은 그동안 가격 거품이 많았거나 독자층이 넓은 분야다. 반면 가격이 오른 책은 독자층이 좁아 1쇄(약 1500부)도 팔릴까 말까한 책들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새 도서정가제 도입으로 출판계에 가격 거품을 빼는 분위기는 확실히 생겼다고 평가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독자층이 넓은 신간은 2000원 정도 가격이 낮게 책정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체부가 초등학교 학습서를 내는 대표적인 출판사 4곳의 참고서 가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2학기 대비 가격이 3.8%로 증가했다. 교육서는 가격 거품이 빠질 것으로 예측됐지만 종이 값, 저작권료 인상 등 다양한 이유로 가격이 올라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새 정가제에는 18개월이 지난 구간(舊刊)의 가격을 다시 정할 수 있는 ‘재정가제도’가 포함됐다. 새 정가제 시행 후 시리즈물을 포함한 5003종이 가격 재조정을 거쳤고 평균 가격(4만6356원)이 54.8% 하락했다. 하지만 전집류가 68.7%에 달하는 등 읽을 만한 양서가 부족했다.
●정부는 “연착륙” VS 현장 “아직 70점”
문체부는 “새 정가제가 연착륙했다”고 평했지만 현장 평가는 온도차가 조금 있었다. 동아일보가 출판사 대표, 대형서점과 지역서점 관계자, 도서 물류업자, 출판전문가 등 출판 관련 종사자 12명을 대상으로 ‘새 정가제 평가 및 만족도’를 설문조사한 결과 10점 기준으로 7점으로 나타났다. 연착륙했다고 보기에 다소 미흡하다는 평이었다.
중견출판사 A 대표는 “지난해 1, 2월에 비해 매출이 40% 정도 떨어졌다”며 “책을 저렴하게 사려는 소비자군이 아예 서점을 방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 정가제의 틈새를 파고드는 편법 탓에 시행령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B출판사 대표는 “할인이 제한되기 때문에 책을 산 독자에게 경품을 주는 이벤트를 많이 한다”며 “말이 추첨이지 응모자 모두에게 경품을 주는 편법”이라고 말했다.
지역서점은 살아났을까? 25개 지역 서점 중 15개 서점은 매출 변화가 없었다. 9개 서점만 매출이 7% 내외로 증가했다.
향후 6개월은 더 지켜봐야 새 정가제의 성패가 드러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출판인회의 윤철호 회장은 “아직 단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며 “바뀐 환경에 맞게 가격보다는 가치로 승부하겠다는 출판계 전반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