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지도에서 ‘구슬모아 당구장’을 검색하면 서울에서만 9곳이 나온다. 지난해 겨울 대충 찍고 출발했다가 용산구 원효로 상가 뒷골목 문 걸어 잠근 진짜 당구장 현관 앞에 서서 한참을 당황했다. 한남동 대사관길 초입 골목 안 건물 반지하층에 있는 ‘구슬모아 당구장’은 신진 작가 개인전을 주로 여는 230m² 면적의 소규모 전시공간이다. 종로구 대림미술관이 임차해 2012년 11월 별관으로 문을 열었다. 전엔 당구장이었다. 전시실 한쪽에 당구대와 큐대 진열장을 공간이 쓰인 흔적으로 하나씩 놓아뒀다. 쳐도 된다. 점심시간마다 찾아와 전시는 본척만척 당구에 열중하는 주변 직장인도 있다.
8일까지 개인전 ‘정말이지너는’을 여는 일러스트레이터 무나씨(본명 김대현·35)는 작품 앞에서 사람들이 당구 치는 광경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던 듯하다. 가부좌한 인물을 여러 겹 모시스크린에 프린트한 설치작품 ‘여러 하나’를 당구대 위에 바투 매달았다.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무나씨는 그래픽디자인 회사에 다니며 먹물과 검정 잉크만 쓰는 드로잉 작업을 해 왔다. 3학년 때 동양미술사 책에 나온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가 맘에 들어 따라 그리다가 동그랗게 솟은 뒤통수와 게슴츠레한 눈 코 입을 가진 페르소나 캐릭터를 얻었다. 그는 “내 안에 스스로 갇힌 내가 싫어 ‘나는 없다’라고 선언하고 싶었다”며 “무아(無我)에 가까워지고 싶어 만든 닉네임이 어찌어찌 불리다 보니 ‘무나’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아 ‘메종키츠네’ 등 패션업체와 협업하며 미국 뉴욕타임스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0년에 이어 두 번째 개인전. 큰 설치 작품은 처음이라는데 어색한 구석이 없다. 무아지경의 자아들이 무명실을 줄줄이 당겨 걸어 만든 가상의 수면 아래 하반신을 담그고 합장하거나 손끝으로 물을 저어 어루만진다. 모든 움직임에 절박함이 배어있지만 조급하게 종종거리지 않는다. 여럿인 듯 하나이고 하나인 듯 여럿이다. 작가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형성된 나와 원래의 나는 다른 듯 하나다. 검은 선과 흰 여백은 나와 타자, 모든 존재의 구분과 교감을 무한히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신작은 전시공간에서 만들었다. 곁에는 줄곧 향불을 피웠다.
진지하면서도 우울하거나 무겁지 않은 당구장 전시실 옆 큰길을 건너 간판 없는 레스토랑 ‘오마일(5mile)’에 앉았다. 2011년 5월 문을 열어 널찍한 창고 구석 낡은 소파에 널브러진 채 스낵과 맥주를 즐기는 분위기로 입소문을 얻은 곳이다. 철물과 목재로 마무리한 내부 공간이 허술한 듯 깔끔하고 맵시 있다. 바삭하게 구운 식빵 속을 네모꼴로 파서 담아낸 크림파스타가 대표 메뉴다. 매콤한 떡볶이와 착착 붙어 넘어갈 식감이다. 메뉴판에 떡볶이, 있다. 음식점의 국적? 그런 경계 없어진 지 오래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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