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영국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책은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도, 유명인사가 쓴 자서전도, 팍팍한 현실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길을 제시해 주는 자기계발서도 아닌, 한 평범한 여성의 자서전 ‘참매 길들이기(H is for Hawk)’다. 지난해 7월 출간됐을 때 이 책이 이렇게 성공을 거둘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 헬렌 맥도널드는 심지어 자서전을 펴내기엔 유명인의 뒤축에도 속하지 못할 평범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 주제는 일반 독자에게 생경한 ‘참매를 길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 책은 영국 언론 가디언과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하는 ‘올해의 책’으로 뽑혔고, 논픽션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새뮤얼존슨상을 수상하더니 영국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코스타상까지 석권하고 말았다. 도대체 이 책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저자 맥도널드 씨는 코스타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책을 “사실 매우 이상한 책”이라고 일컬으며 “(처음 이 책을 썼을 때는) 아무도 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참매 길들이기’는 사진기자로 일했던 저자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술과 친구들, 덧없는 연애도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달래주지 못했고, 저자는 참매(사냥을 하기 위해 길러지고 훈련된 매)를 길러보기로 결심한다. 충동적인 결심만은 아니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매를 좋아해서 매에 대한 각종 서적을 탐독했고, 매와 함께 놀아본 경험도 있었다. 저자는 즉시 스코틀랜드로 가서 약 130만 원을 주고 참매를 산다.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몰두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게 구매 이유였지만 저자는 곧 아기 참매 ‘메이블’에게 빠진다. 애완동물로 쉽게 길들여지는 개나 고양이에 비해 참매는 마치 먹이와 그 자신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한 야생성이 특징이다. 갓 태어난 병아리를 산 채로 잡아먹는 메이블의 모습을 보면서 독자들은 생명의 경이로움과 동시에 먹이사슬의 잔인함을 목격하게 된다. 메이블이 길들기까지는 그로부터 5년의 시간이 걸리게 된다.
이 책은 새뮤얼존슨상 16년 역사상 유일한 자서전 수상작이다. 맥도널드 씨의 유려한 글 솜씨는 데일리 텔레그래프, 옵서버, 가디언, 타임스 등 유력지들이 앞다투어 칭찬한 만큼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 책에 평균 평점 4.3(5.0 만점)을 준 아마존의 독자들은 “가족을 잃은 작가의 개인적인 슬픔에서 보편적인 공감을 느꼈다”고 입을 모은다. 한 독자는 “표지만 보고는 단순히 조류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책은 조류에 대한 책이지만 책의 중심 주제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는 법이다.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조언이 그대로 들어맞는다”고 평했다. 다른 독자는 “이 책을 읽고 처음으로 영국의 전원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맥도널드 씨가 보여준 아름다운 자연과 경이로운 생명에 찬사를 보냈다.
결국 누구든 살아가며 한 번은 경험하게 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과 그 슬픔을 극복해내는 강인한 마음, 그리고 인간을 항상 포용해 주는 드넓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이감이 잘 어우러진 것, 이것이 만인의 사랑을 받게 만든 책의 비밀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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