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출토된 서봉총 유물 9점이 사라졌다는 4일자 동아일보 A1면 기사가 한 포털 사이트에 소개되자 이날 오전부터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양대(梁帶·머리에 쓸 수 있도록 테두리 안쪽에 십자로 붙여 놓은 금띠)’를 지닌 유일한 신라 금관인 서봉총 금관이 일제강점기 때 인위적으로 훼손된 데 이어 구슬 팔찌 등 주요 유물들이 자취를 감췄다는 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는 반응이었다. 이 중에는 모로가 히데오 등 일본 도굴꾼들이 불법 반출한 문화재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인 환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일제강점기 발굴된 신라 고분은 왕릉급을 비롯해 소형 고분까지 줄잡아 1000여 기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서봉총을 발굴한 고이즈미 아키오는 1927년 발표한 약식보고서에서 6개월 만에 50기가 넘는 고분을 발굴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서봉총 한 곳만 해도 최소 1년의 발굴 기간이 필요하다는 국립중앙박물관 측 설명을 감안한다면 ‘발굴’보다 ‘약탈’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행태다. 이 때문에 서봉총뿐 아니라 다른 신라 고분들도 유물 훼손이나 불법 반출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문화재계에서는 중앙박물관의 신라 고분 재발굴 사업을 계기로 일제의 문화재 관리에 대한 전방위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응천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는 유물이 수십만 점에 달하지만 인력이 부족해 아직 완전히 파악되지 않았다”며 “일제강점기 자료들에 대해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 환수를 위해서라도 이런 실태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 명확한 기초 자료를 증거로 내놓으면 해당 국가도 문화재 반환 요구를 무작정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모로가가 빼돌린 금관총 유물이 포함된 ‘오구라 컬렉션’에 대해서도 상황에 따라 재협상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 컬렉션은 1964년 한일 국교 정상화 교섭 당시 개인 재산이라는 이유로 논의에서 빠졌다. 그러나 오구라 다케노스케의 아들이 1981년 도쿄박물관에 기증하면서 국가 소유가 됐다.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고 우리 문화재의 소중한 원형을 지키려면 지난 과거라도 끝까지 추적하고 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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