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이 또 한번 파격 변신을 꾀한다. 국립창극단은 지난해 ‘변강쇠 점찍고 옹녀’를 통해 창단 52년 만에 처음으로 ‘19금 창극’과 ‘한달 장기 공연’을 시도해 성공을 거뒀다. 올해는 첫 작품으로 서양 희곡을 선택했다. 서사극의 아버지라 불리는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코카서스의 백묵원’에 한국의 판소리를 입혀 ‘동·서양의 문화 융합’을 만든다.
‘코카서스…’의 연출은 2008년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으로 한국 연극계에서 화제를 모은 재일교포 3세 연출가 정의신(58)이 맡았다. 6일 국립극장에서 만난 그는 “연극과 오페라는 연출해봤지만, 창극은 첫 도전”이라며 “한국인의 한과 슬픔이 농축된 판소리를 좋아해온 터라 창극 연출만큼은 오랫동안 욕심을 내왔다. 내게 내재된 한국인 유전자(DNA)가 이 작품에서 활약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가 정통 가무극인 ‘창극’에 서양 희곡을 끌어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정 감독은 “독일 작가의 희곡이 한국 전통 판소리와 만났을 때 어떤 효과가 날지 실험하고 싶었다”며 “‘코카서스…’는 중국 원나라의 고전 ‘석필이야기’를 번안한 작품이기 때문에 한국 정서에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카서스…’는 쉽게 말해 ‘낳은 정’ VS ‘기른 정’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영주 부인 나텔라는 전쟁 통에 아들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아들이 유산을 받게 되자 다시 그를 찾으려는 한다. 반면 하녀 그루셰는 버려진 아들을 거둬 제 자식처럼 키웠다. 이 두 여인 간의 양육권 재판 과정이 극의 중심 내용이다. “생모와 양모가 가슴 절절한 판소리로 벌이는 대결을 통해 관객은 전쟁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과 진정한 모성애를 고민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정 감독은 원작의 결말을 살짝 비틀었다고 했다. 재판관이 나텔라와 그루셰에게 원 안에 서 있는 아이의 양손을 각각 잡아당기게 한다. 재판관은 순간 아이의 손을 놓아버린 그루셰에게 양육권을 부여한다. 솔로몬과 같은 판결이지만 창극 ‘코카서스…’에선 재판 이후 또다시 폭격과 총성이 울려 퍼진다. 각색된 결말에 대한 힌트를 달라 하자 그는 미안한 듯 웃으며 “이전 작품에서도 전쟁에서 비롯된 인간의 불안을 때론 슬프게, 때론 휴머니즘으로 그렸다”며 “희극과 비극은 종이 한 장 차이여서 관객 입장에선 비극일 수도, 희극일 수도 있는 열린 결말”이라고 말했다.
정의신은 이번 창극의 무대 설치와 캐스팅도 파격적으로 선택했다. 그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의 객석 1500석을 비워두고 대신 무대 위에 600개의 객석과 세트를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객석을 아예 비우는 이유는 뭘까. “관객과 배우, 무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예요. 관객들이 배우들의 생생한 움직임을 더 바라봐줬으면 좋겠거든요.”
주역은 창극단의 인턴 단원들의 몫으로 넘어갔다. 하녀 그루셰 역은 창극단에 들어온 지 8개월 된 인턴단원 조유아(28)가 맡게 됐다. 정 감독은 “오디션을 볼 때 과거 경력은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이 작품의 역할에 가장 잘 맞는 배우들을 선택하는 거죠. 조유아 씨는 그야말로 하녀 그루셰와 같은 시골 소녀의 이미지가 있었어요.”
‘코카서스…’의 판소리는 김성국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가 새로 만들었다. 21~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 2만~7만 원, 02-2280-4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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