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의 죽음입니다. 검은 두루마기와 노잣돈에서 연상되듯 저승엘 갑니다. 그런데 실수라네요. 다시 돌아가라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노잣돈이 필요하답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곳간은 텅 비었습니다. 이 곳간은 평소에 착한 일을 한 만큼 모인 곳이라는데 말입니다.
방법은 하나, 가까운 사람의 곳간에서 노잣돈을 빌리고, 돌아가서 49일이 되기 전에 갚아야 합니다. 다 갚지 못하면 다시 저승행! 어떤 방법으로 갚을지는 알아서 찾을 것! 여기까지 이야기는 가벼운 코미디 같습니다.
이 주인공의 곳간이 비어있는 이유는 그가 학교 폭력 가해자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빼앗거나 훔치는데 죄의식이 없고,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도 당연하다 생각하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빌린 노잣돈의 주인이 자신이 지금껏 괴롭혀왔던 ‘찌질이’입니다. 저승에서 돌아왔지만 주인공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어느 곳이나 따라다니는 노잣돈 장부, 잊을 만하면 날아오는 저승사자의 문자 메시지, 병원에서 퇴원해보니 10여 일만 남아있는 시간. 이런 것들이 시시각각 주인공을 죄어옵니다. 돈으로는 갚을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주인공은 조금씩 그 빚을 갚는 방법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학교 폭력이란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이야기에 얹어 전달하는 방법으로, 진지함과 경쾌함 사이의 균형을 잡는 능력이 돋보입니다. 주인공 주변에서 격려와 질책을 보내던 저승사자의 모습이, 작가의 건강한 동화관인 듯 보여 든든했습니다.
마지막 빚을 갚는 순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던지는 ‘나 돌아왔어!’란 말,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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