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이코패스…그러나 ‘조커’와는 다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3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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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심연/제임스 팰런 지음·김미선 옮김/260쪽·1만3500원·더 퀘스트

바야흐로 정신장애가 안방과 극장을 점령한 시대다. 전 세계가 기다리는 영국 드라마 ‘셜록’의 주인공 셜록 홈즈는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있고, MBC 드라마 ‘킬미 힐미’의 차도현은 해리성 정체장애(다중인격)가 심각하다. 주인공이 이 정도면 악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정신장애를 가진 악당으로는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 영화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대표적이다. 대중은 그들을 ‘사이코패스’라 부른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이자 성공한 신경과학자인 제임스 팰런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스스로를 사이코패스라고 털어놨다.

이 책의 원제는 ‘사이코패스의 내면(The Psychopath Inside)’이다. 한국어판 제목인 ‘괴물의 심연’은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저서 ‘선악을 넘어서’ 속 한 구절(‘괴물의 심연을 바라볼 때 심연이 당신을 바라보지 않도록 주의하라’)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 제임스 팰런은 15년 동안 우리가 흔히 ‘괴물’이라 부르는 사이코패스의 뇌를 연구하다 도리어 자신의 뇌에서 그 ‘괴물’을 발견한 인물이다. 그는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은, 타인의 감정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고 무자비하며 교활한 살인자들의 뇌를 분석하며 사이코패스의 뇌가 갖는 공통 패턴을 탐색했다. 저자는 2005년 10월 정작 자신의 뇌가 그 패턴에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저자는 혼란에 빠진다. 타인의 것도 아닌 자신의 뇌를, 연구결과의 신뢰도를 낮추는 반례로써 추가해야 할까.

뜻밖에도 저자는 자신의 핏줄에 역사적으로 악명 높은 살인자들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평범하면서도 어떤 면에선 비범했던 어린시절을 회고하며 자신에게 내재된 사이코패스적 성질들을 확인한 저자는 왜 자신이 다른 사이코패스들처럼 살인범이 되지 않았는지를 추적한다.

이 책은 ‘사람의 행동과 성격이 타고난 유전자에 의해 80%가 만들어진다’고 믿던 저자의 결정론적인 가치관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그리고 다시 어떻게 재구축되는지를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이다. 저자의 결론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사이코패스는 타고난다. 하지만 ‘나쁜 사이코패스’는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 저자는 책에 들어가기에 앞서 부모에게 자신이 잘 자라도록 보살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남겼다.

사이코패스는 문화와 인종을 막론하고 인간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현재 인구 중 약 2%가 사이코패스로 알려져 있다. 만약 사이코패스가 인류 전체에 명백한 해악이라면 진화 과정 중 도태돼 사라졌어야 옳다. 저자는 이 점을 근거로 사이코패스가 인간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음을 역설한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선천적으로 결여된 탓에 냉철한 결단력을 가질 수 있고, 스트레스에 무감각한 특성 때문에 급박한 상황에서도 과감한 배팅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사이코패스라는 것. 미국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이 이런 ‘성공적인’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성공적인’ 사이코패스가 관심과 올바른 보육에 의해서만 만들어졌음에 주목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범죄자의 길을 걷게 된 사이코패스들은 공통적으로 어린 시절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비단 사이코패스가 아닌 다른 평범한 아이들에게도 이 같은 깊은 관심과 올바른 보육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이우상 동아사이언스기자 id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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