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영하는 2008년 5월 미국 하버드대에서 ‘나를 작가로 만든 것들’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날 그는 소설을 쓰는 이유를 청중들에게 들려줬다. 그는 어릴 적 비무장지대의 전방 부대 관사에서 육군 중령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살았다. 그곳은 벌건 대낮에 북한군이 군사분계선까지 내려와 원시부족처럼 남성성을 과시하며 돼지 멱을 따고 밤이면 노루가 지뢰를 밟고 폭사하는 소리가 불꽃놀이용 화약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하루는 아버지 동료인 육군 중령 하나가 지프차 운전병만 데리고 월북했다. 남은 가족에겐 비극이었다. 얼마 뒤 중령의 아내가 미쳤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는 자신과 또래인 중령의 아들에게 닥칠 운명을 걱정했다.
“거기에는 분명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행위는 이해할 수 없었고 존재는 오리무중이었습니다. 해괴한 일들, 원시적이거나 혹은 반대로 아주 부조리한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인간들이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들의 운명은 물음표 속에 갇혀버립니다. 어쩌면 그 물음표를 문장들로 바꾸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저는 소설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산문집 ‘말하다’에서 털어놓은 고백이다.
작가는 1995년 등단 후 가진 인터뷰나 대담에서 했던 방대한 발언들을 모으고 새롭게 편집해 산문집으로 출간했다. 그는 ‘작가의 말’에 “말이 자아낸 후회들을 글로 극복하려는 작가다운 노력의 소산이라고 이해해주시면 좋겠다”고 썼다. 인터뷰나 강연 동영상에서 맥락이 훼손되거나 잘려나간 자신의 말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소설 창작 과정, 글쓰기의 즐거움, 비관적 현실주의자로서의 자세 등을 이야기한다. 익히 알려진 TV, 신문, 잡지에서 했던 말도 수록됐지만 멀리 해외에서 했던 강연 내용들은 새롭다.
무슨 책을 읽을지 고민하며 ‘책의 향기’ 지면을 펼쳤을 독자들에겐 작가의 책 고르는 기준을 읽어볼 만하다. “첫째는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둘째는 꼼꼼하고 믿음직스럽고 우아한 편집을 제공하는 출판사, 셋째로 번역서의 경우 신뢰하는 번역자의 책을 고르고, 마지막으로 처음 접하는 저자의 책일 경우는 작가의 관상을 눈여겨본다.”
독서에 다시 흥미를 붙이는 간단한 방법도 있다. “자기가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었던 책 다섯 권만 적어본다. 그리고 그 책을 다시 읽어본다. 다시 읽어보면 대부분 자기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책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게 새로운 책을 읽는 것보다 놀랍도록 큰 어떤 발견의 기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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