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속도를 늦추고 한 발씩 천천히… 이 봄, 산이 오라하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9일 03시 00분


네파 아웃도어스쿨과 함께하는 백패킹

《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智者樂水)’라는 말이 있다.

논어에 나오는 이 말은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아마도 나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지혜로워서는 절대 아니다.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하는 지극히 개인적 취향 때문이다. 한데 요즘은 산이 좋아지고 있다. 산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기 때문일 게다. 이번에 매력을 탐방한 곳은 강원 고성군의 금강산. 야영 장비를 배낭에 싣고 떠나는 백패킹, 한 걸음씩 산을 오르는 재미와 노을빛에 취하는 순간 그리고 어두운 밤 자연 속에 몸을 누이는 이색 경험을 할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다. 》

오후 3시. 고성 화암사에 도착했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가 되는 곳이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의 첫 봉인 신선봉에 기대어 있는 화암사는 금강산 팔만구암자의 첫 암자이기도 하다. ‘금강산화암사(金剛山禾巖寺)’라는 글씨가 또렷이 새겨진 일주문을 지나 발걸음을 옮긴다. 금강산이라는 세 글자에서 오는 넉넉함 때문일까. 마음이 참 편안하다. 산사의 고즈넉한 풍경 뒤로 의연한 신선봉의 모습도 아련히 비친다. 본격적인 등산로는 화암사의 명물인 ‘수바위’가 마주보이는 세심교 앞에서 시작됐다. 임진왜란 당시 북진하던 왜군들이 가마니를 덮어놓은 이 거대한 바위를 보고 놀라 달아났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바위 이름에 이삭 수(穗) 자를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완연한 봄기운과는 달리 등산로에는 여전히 흰 눈이 수북했다. 산중의 겨울은 여전히 진행 중인 듯했다. 일단 준비해 간 아이젠부터 착용하고 코스를 확인했다. 오늘 산행은 이곳 수바위 앞에서 시작해 화암골, 성인대를 거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4km 코스. 이후 잼버리수련장으로 이동해 야영을 하기로 했다. 선두는 네파 홍보대사이자 강원도 산악연맹 부회장인 전서화 강사가 맡았다.

세심교 옆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길은 시작부터 꾸준하게 오르막으로 이어졌다. 야영장비로 가득 채운 배낭이 묵직하게 느껴질 정도로 지루한 길이었다. 등산은 초반 30분이 가장 힘들다.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허벅지는 당장에라도 쥐가 날 듯 단단하게 부풀어 오른다. 하지만 사점(死點)이라 부르는 그 지점을 지나면 호흡도 발걸음도 한결 편안해진다. 이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 시간을 어떻게 잘 버텨내느냐 달려있다.

초등학생 시절. 일요일 아침이면 나는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뒷산을 올라야 했다. 손자의 건강을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깊은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오르는 산은 정말이지 고역이었다.

그렇게 산을 타며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산과는 도통 친해질 수가 없었다. 내가 산과 친해진 건, 30대를 훌쩍 넘긴 뒤의 일이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전에도 산에 오를 일이 적지 않았지만 그때까지 산을 오르는 목적은 늘 하나였다. 최대한 빨리 정상을 밟는 것. 모든 일이 그렇지만 과정의 즐거움이 생략된 일은 지루하고 고될 수밖에 없다. 의무적으로 내딛는 걸음은 운동보다는 노동에 가까울 테니까.

아마 그날도 비슷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던 것 같다. 북한산 백운대로 향하던 날이었다. 한데 그날은 왠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속도를 조금 늦췄을 뿐인데, 몸도 마음도 한결 여유로웠다. 오르막을 오를 때도 평지를 걸을 때도 같은 속도와 같은 보폭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평소보다 늦긴 했지만 어느 때보다 편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돌아보니 산은 참 공평했다. 오르막과 평지 그리고 내리막이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니 말이다. 속도를 늦춘다는 건 결국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것. 산이 내게 가르쳐준 가장 큰 선물이다. 그날 이후 산을 대하는 마음이 조금씩 달라졌던 것 같다.

동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성인대에 닿은 건 그렇게 2시간을 걸은 뒤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시원스레 펼쳐진 동해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했다.

너럭바위 구간에선 울산바위의 늠름한 자태와 구절양장(九折羊腸·아홉 번 굽은 양의 창자라는 뜻으로 구불구불하고 험한 산길을 가리키는 말) 이어진 미시령 옛길도 두 눈에 담을 수 있었다. 2시간 발품에 이 정도면 정말이지 거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풍광이었다.

성인대에서 서둘러 하산을 준비한 건 바람 때문이었다. 준비해 간 간식을 먹는 짧은 시간 동안 기상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이다. 부는 듯 마는 듯 여리게만 느껴지던 바람은 한순간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세차게 불어대기 시작했다. 바람 많기로 유명한 곳이라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참가자들은 설악산 산악구조대장 출신인 전서화 강사의 지시에 따라 등산용 스틱으로 인간띠를 만들어 한 명씩 너럭바위 구간을 벗어났다. 바람은 여전히 거세게 불어댔다. 하지만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빛은 그 어느 때보다 고왔다.

▼네파 홍보대사 전서화 강사가 전하는 초보 백패킹 가이드▼

1. 계절에 맞는 장비를 준비하자

추운 날씨에 백패킹을 하려면 아이젠은 물론 방한을 위한 외투와 장갑, 핫팩 같은 보온용 장비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3월에도 산 속에서 야영을 하는 것은 겨울만큼 춥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등산화는 방수가 되는 이중 등산화가 적합하다.

2. 사전준비를 철저히 하자

백패킹 지역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한 뒤 움직이는 게 좋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를 이용해 하산로에 대한 정보는 사전에 필히 확인해야 한다. 출발 전 주변사람에게 자신이 가는 곳의 위치를 일러두는 것도 잊지 말자.

3. 응급용품을 준비하자

산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찰과상 등에 대처할 수 있는 구급약을 준비하자. 손이 얼었을 때는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의 체온을 이용해 서서히 녹여주는 게 좋다.

글·사진 정철훈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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