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향한 공공디자인]<2>‘누구나 편하게’ 유니버설 디자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0일 03시 00분


어울림의 출발은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닌 간단한 배려

①캐나다 밴쿠버의 롭슨 광장 계단. 장애인 등 신체적 제약을 가진 사용자만을 위한 시설을 따로 만들지 않고 모든 사람이 함께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대표적 사례다. ②시각장애인이 보통의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점자 출력기기. ③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접근하기 쉽도록 높이를 조정한 홍콩의 한 건물 내 서비스 카운터.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①캐나다 밴쿠버의 롭슨 광장 계단. 장애인 등 신체적 제약을 가진 사용자만을 위한 시설을 따로 만들지 않고 모든 사람이 함께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대표적 사례다. ②시각장애인이 보통의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점자 출력기기. ③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접근하기 쉽도록 높이를 조정한 홍콩의 한 건물 내 서비스 카운터.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캐나다 밴쿠버 중심가의 롭슨 광장. 건축가 아서 에릭슨(1924∼2009)의 설계로 1980년 조성된 공간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 광장의 사진은 대부분 진입부 계단에 초점을 둔 이미지다. 그저 무심히 ‘보기 좋은’ 피사체를 찾는 관광객에게도 정갈하게 다듬어 앉힌 이 계단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하지만 디자인 과정을 되짚어볼 때 이 계단의 아름다움은 그저 외관에서만 비롯한 것이 아니다.

서울 한복판의 큼직한 오피스빌딩이나 공공시설물 앞 계단과 이 광장 사진을 비교해 보면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차이점은 장애인용 경사로의 배치다. 서울에서는 대개 계단 한쪽 구석에 따로 칸막이를 두고 장애인용 경사로를 숨겨놓듯 배치한다. 롭슨 광장의 경사로는 일반 보행자가 오가는 계단 한복판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휠체어나 보행보조기를 이용하는 사람은 계단 구석이 아닌 중앙에서 ‘함께 어울려’ 이동한다. 이 계단은 신체적 제약을 가진 구성원을 대하는 사회 전체의 시선을 요약해 알려준다.

경제적 성장 속도 유지에 매달려 온 한국에서는 노약자, 장애인 등 일상생활 움직임이 쉽지 않은 구성원을 배려하는 디자인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롭슨 광장과 서울 계단의 차이는 한국의 공공디자인이 채워야 할 빈틈을 뚜렷이 보여준다. 나와 다른 처지에서 불편을 겪는 이를 구석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배려의 디자인. 그것이 ‘유니버설(universal) 디자인’의 요체다.

장애인, 노약자, 임신부 등의 불편을 최소화한 유니버설 디자인의 총체적 개념은 영국의 건축가 겸 인권운동가 셀윈 골드스미스(1932∼2011)가 저서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Designing for the Disabled)’에서 정립했다. 이를 널리 알린 인물은 미국 건축가 로널드 메이스(1941∼1998)다. 소아마비를 앓아 평생 휠체어를 이용한 메이스는 “특별한 ‘장애인용 디자인’보다는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이가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후 유니버설 디자인은 신체적 제약을 가진 사람뿐 아니라 해당 공동체의 언어나 관습에 익숙하지 않은 이방인의 불편까지 배려하는 개념으로 확장됐다. 곽수정 한국예술종합학교 문화디자인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장애인과 노인을 사회로부터 격리하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필요성이 갈수록 절실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대개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간단한 배려에서 출발한다. 휠체어를 쓰는 사람을 위해 높이를 낮춘 일본 공동주택 현관의 우편함이 좋은 사례다. 하지만 신체장애를 갖지 않은 이가 허리를 굽혀 우편함을 이용하는 작은 불편을 감수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정책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노르웨이 정부는 ‘유니버설 디자인 행동계획’을 수립해 2025년 완료를 목표로 사회 시설 전반의 접근성을 개선하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장애인과 노약자의 시설 접근성 차별을 철폐하는 ‘국가접근성계획’을 추진했다. 일본은 국토교통성이 2005년 수립한 ‘유니버설 디자인 정책대강’을 지침으로 삼아 대중교통 등 공공시설과 이용 프로그램에 물리적 차별을 최소화한 디자인 해법을 적용하고 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유니버설 디자인#배려#아서 에릭슨#로널드 메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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