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무대 위, 2m 남짓한 높이의 앙상한 나무 한 그루 앞에 허름한 차림의 두 사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서 있다. 무려 50년째다. 낮이나 밤이나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린다. 두 사내는 고도가 어떤 인물인지, 어디서 언제 고도를 만날 수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해 질 무렵 고도와 함께 양을 키우며 산다는 한 소년의 외침만을 듣고 매번 그를 기다릴 뿐. “고도 씨가 오늘은 못 온다고 전해 달래요. 내일은 꼭 온대요.”
두 사내가 고도를 기다리다 만난 포조와 그가 온갖 심부름을 시키며 개처럼 부리는 하인 러키가 몇 가지 해프닝을 보탤 뿐, 무의미한 동작과 공허한 말들이 오간다. 그런데 묘하다. 그 공허함 속에 묘한 ‘철학’이 비집고 들어온다. “내 삶의 ‘고도’는 무엇일까….”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에 위치한 산울림소극장(총 76석). 올해로 국내 초연 45주년을 맞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을 보기 위해 관객 76명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고도…’가 현대 연극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이라 그런지 이날 객석엔 연극영화과 출신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 큰 노트를 펼쳐 든 채 메모하며 관람했다. 한 장면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이들에게 ‘고도…’는 문화 콘텐츠이자 반드시 공부해야 할 그 무언가로 보였다.
임영웅 “죽을 때까지 고도 공연 올릴 것”
이날 공연 전 감기에 걸려 안색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고령의 연출가 임영웅 씨(79)가 지팡이를 짚은 채 극장에 도착했다. 1969년 초연 공연부터 45년간 뚝심 있게 ‘고도…’를 연출해 눈감고도 장면을 연출할 수 있지만, 늘 공연장을 찾아 사전 점검을 한다.
지금의 ‘고도…’가 있기까지 연출가 임영웅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그가 처음 ‘고도…’를 접한 건 1960년대 초반 신문사 문화부에서 연극 담당 기자로 일할 때였다. “해외에서 화제가 된 작품이어서 일본어판으로 처음 읽었죠. 뭔가 묘한데 강렬하고…. 희한하더라고요.”
그러다 그는 1963년 동아방송 개국 때 라디오 PD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배우 최은희를 디스크자키로 내세운 프로그램과 한국 토크쇼의 원조인 ‘유쾌한 응접실’ 등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에게 ‘기자’나 ‘PD’의 타이틀은 잠시 추위를 피하고자 걸친 ‘외투’와 같았다. 6·25전쟁 발발 후 부산으로 피란을 갔을 때 휘문고 연극반 동창들과 연극 무대를 올렸을 정도로 연극에 열정을 갖고 있었다. “늘 마음속엔 언젠가 연극판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염원이 있었죠.”
당시 그에게 연극계는 ‘고도’와 같았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한창 동아방송에서 일하고 있을 때 예그린악단 박용구 선생이 최창봉 동아방송 방송부장에게 급한 부탁을 했어요. 국내 첫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제작하는데 연출가로 임영웅을 좀 빌려 달라고요. 근데 예그린 악단에 박 선생을 추천한 게 최 부장이었거든. 하하. 그렇게 해서 잠시 예그린 악단의 뮤지컬 작품을 연출하러 갔다가 연달아 작품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공연계에 발을 들여놓았죠.”
‘고도…’ 초연 때부터 포조 역을 맡은 배우 김무생과 극단 산울림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인 ‘위기의 여자’의 주인공 박정자 등 숱한 배우와의 인연도 동아방송이 출발점이 됐다. “김무생 박정자 사미자 전원주 등 숱한 배우들이 동아방송 성우 1기였어요. 내가 라디오 드라마 PD로 일하다 보니 이들과 함께한 경험이 많았죠. 연극 연출을 하게 되면서 이들 배우들과 함께 작업도 많이 했어요.”
45년간 31번째 ‘고도…’를 연출하면서 총 41명의 배우와 작업한 그는 “초연을 포함해 내리 세 번 ‘에스트라공’ 역을 맡았던 고 함현진과 역시 초연 멤버인 고 김무생이 유독 내 기억에 남는 배우”라고 말했다.
“함현진은 참 출중하고 독특한 배우였어요. 대사를 까먹어도 능청스럽게 즉석에서 대사를 만들어 내 상대 연기자를 당황시켰죠. 상도 받았고요. 해외여행이 금지되던 시절, 프랑스 파리에서 사는 게 평생 소원일 정도로 감성적인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이란에서 의문사하며 우리 곁을 떠났죠.”
임 연출가에게 ‘고도’의 초연은 애틋하다. “고도가 어려운 작품이라 흥행에 성공하리라 생각 못 했죠. 근데 공연 직전 고도 작가인 사뮈엘 베케트가 노벨상을 받으면서 전회 전석 매진되는 진기록을 세웠어요. 지금껏 고도를 해오지만 그때의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죠.”
그는 배우들에게 혹독한 지시를 하는 연출가로 유명하다. 대사 한 줄을 읊는 데에도 배우들은 그에게 동작, 표정, 톤 등 3개 이상의 주문을 받는다. “내가 완벽주의자라 그래요. 나는 지금도 동작 플랜 평면도를 그려요. ‘이 대사 할 때는 발을 세 발짝 떼고 가서 말해라’와 같은 주문이죠. 등장인물은 살아있는 사람 아닌가요. 완벽하게 구현해야죠. 배우들이 처음엔 힘들어해도 나중엔 오히려 편하다고 입을 모아요.”
임 연출가는 ‘고도…’를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자 1985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자신의 집을 헐고 사재를 털어 ‘산울림 소극장’을 세웠다. 개관작은 역시나 ‘고도…’였다. 그런 임 연출가를 평생 바라보며 자란 아들은 임수현 서울여대 불문과 교수(50). 그는 초등학교 때 이 극장에서 공연한 ‘고도…’를 보고 연극에 눈을 떴다. 임 연출가는 “나는 아들에게 강요와 간섭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 아버지”라며 “아들이 프랑스 유학을 가서 석사학위 논문과 박사학위 논문을 ‘고도…’의 작가 베케트로 써서 학위를 받았는데, 나도 놀랐다”며 웃었다.
“‘고도…’는 나에게 운명 같은 작품이에요. 그래서일까요. 죽기 전까진 매년 ‘고도…’를 무대에 올릴 겁니다. 나는 아직도 고도를 기다리니까요.”
한명구 “국내에서 가장 오래 고도를 기다린 사람”
국내에서 ‘가장 오랫동안 고도를 기다려 온 배우’는 연극배우 한명구 씨(55)다. 그는 이번 초연 45주년 기념 공연에서 ‘블라디미르’ 역을 맡아 무대에 선다. 1994년 블라디미르 역으로 처음 출연한 뒤 잠시 러키 역을 맡은 1996년과 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2006∼2007년 시즌을 제외하곤 줄곧 블라디미르로 고도를 기다려 왔다.
“벌써 22년째네요. 저도 몰랐는데 총 2000여 회 가운데 이번 공연 출연 회차까지 따지면 블라디미르로만 780회, 러키로 출연한 80회까지 합치면 800회가 훌쩍 넘네요. 제 연기 인생의 3분의 1을 ‘고도’와 함께한 거죠.”
유독 ‘고도…’ 작품을 선호한 이유가 뭘까. 그는 “작품이 좋아서”라고 답하며 활짝 웃었다.
“이 작품의 특징이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고 철학적 사유를 많이 하게 해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배우가 돼야 할지 늘 되돌아보게 됩니다. 희한하게 이 작품이 올라갈 때쯤 되면 스케줄이 비어요. 궁합이 잘 맞죠.”
이번 공연에서도 그는 1994년 첫 공연 때 입은 의상을 다시 입고 나온다. 다 떨어진 허름한 양복에 발가락이 삐죽 나온 구두. 그는 “구두는 제가 직접 대패로 밀어서 구멍 뚫은 겁니다. 매번 새로 살 필요도 없고, 낡을수록 빛을 더 발해 좋아요.”
오랜 시간 ‘고도…’ 작품을 하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다. “2002년 공연 때는 너무 힘들더라고요. 두 달 사이에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죠, 소화가 늘 안 돼 애꿎은 소화제만 먹으며 79회 공연을 했죠. 이후 병원에 간 뒤에야 담석증 때문인 걸 알았을 정도로 둔했던 거죠. 하하.”
‘고도…’를 통해 몸은 망가졌어도 지식의 폭은 넓어졌다. ‘고도…’에선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고도를 기다리는 지루함을 잊고자 여러 가지 놀이를 하는데 그는 이 놀이의 특성을 주제로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현재 극동대 연극학과 교수로 재임 중인 그에게 고도가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동환 “25년 만에 마주한 고도”
이번 공연에서 한명구와 같은 역에 캐스팅된 배우 정동환 씨(66)는 25년 만에 다시 ‘고도…’와 마주한다. 1990년 정기공연에 참여한 그는 그해 10월 작가 베케트의 고향 아일랜드 더블린의 연극 페스티벌에서도 같은 역을 맡았다.
“당시 1막이 시작됐는데 객석의 노신사들이 하나같이 ‘고도…’의 대본을 펴 놓고 연극을 관람하고 있어 흠칫했어요. 다 ‘고도…’ 전문가들처럼 보이니 머리털이 쭈뼛 서더라고요. 정말 넥타이에서 땀이 흐를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다음 날 대사관에서 연락이 왔죠. 빨리 신문을 사서 보라고요.”
가판대에서 신문을 본 그는 깜짝 놀랐다. “얼마나 많은 매체에서 저희 공연 사진을 지면에 실었는지 몰라요. 특히 아일리시타임스는 1면에 공연 사진을 넣어 톱기사로 처리했죠. ‘동양에서 온 고도를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제목과 함께요. 그때의 그 벅찬 감동은 잊을 수가 없어요.”
연기 경력 47년 차인 그는 요즘 신인의 자세로 ‘고도…’ 무대에 오르고 있다. 개막 전 연습량도 다른 배우들의 2배 이상이었다. “함께 무대에 오르는 후배들은 100번 이상 ‘고도…’에 출연한 게 기본이에요. 전 25년 전에 한 번 하고 안 했기 때문에 신인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죠. 조바심도 나지만 작품의 매력에 빠져 요즘 행복합니다.”
그가 이번 ‘고도…’ 공연을 위해 여러 작품 제안을 거절했고, 대학 강단에 서던 일도 잠시 내려놓았다. “이 작품에 배우로서 참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합니다.”
연극 ‘고도…’는 5월 17일까지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산울림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3만∼4만 원. 02-334-5915
▼1969년 이후 2000회 넘게 공연… 관객 50만여 명▼
‘고도를 기다리며’의 기록들
극단 산울림이 45년간 공연한 ‘고도를 기다리며’는 오랜 시간만큼 많은 기록을 지닌 작품이다. ‘고도…’는 이번 45주년
공연까지 2000여 회 공연됐다. 관객도 50만 명에 이른다. 1989년에는 한국 극단 최초로 프랑스 아비뇽 국제연극제에
참가했으며 1986년 동아연극상 연출상 등 45년간 총 15개의 상을 받았다.
이번 공연까지 ‘고도…’를 거쳐 간
배우는 모두 41명이다. 블라디미르 9명, 에스트라공 6명, 포조 8명, 러키 7명, 소년 16명 등 모두 46명이지만 송영창
전국환 한명구 전내진 이호성 씨가 각각 2개의 배역을 맡았다. 이 중 1994∼2015년 정기공연에 모두 참여한 한명구 씨가 최다
출연 배우다. 1990년부터 2005년, 2015년 아홉 시즌 동안 러키 역을 도맡은 배우 정재진 씨와 2005년부터 9년간
450회 출연한 박상종 씨도 일명 ‘고도 전문’ 배우들이다. 그동안 배우 네 명이 별세했는데 1969년 초연의 출연진인
함현진(에스트라공) 김무생(포조) 이재인 씨(소년)가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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