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총 환두대도, 포항 중성리 신라비, 중국 랴오닝 성 홍산문화의 유물인 흑피옥기와 여신상(왼쪽부터). 환두대도에 적힌 ‘이사지왕’이란 글씨와 중성리 신라비의 글씨는 모두 삐뚤빼뚤하다. 또 용 태양신 매미가 섞인 흑피옥기와 여신상에 적힌 글자들은 해독은 안 됐지만 자유분방한 모양이어서 고대 한민족의 글자와 유사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김영사 제공
이 책은 문화재를 담당하고 있는 기자가 평소 품었던 의문을 풀 새로운 단서 하나를 던져줬다. 2013년 7월 국립중앙박물관이 신라 금관총의 ‘둥근 고리 큰칼(環頭大刀·환두대도)’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사지왕(이斯智王)’ 명문에 얽힌 비밀이다. 이달부터 중앙박물관이 금관총 재발굴에 들어갔지만 아직 무덤 주인의 이름은 고사하고 성별조차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사지왕 명문이 고고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다.
칼집 끝 금속 부분에 휘갈겨 새겨진 네 글자를 처음 본 순간 솔직히 ‘애들 장난인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전체적으로 글씨체가 삐뚤빼뚤하고 뭐 하나 균형 잡힌 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광개토대왕릉비 탁본(위)과 백범 김구가 쓴 글씨체는 전체적으로 유사한 필적으로 용기 있고 천진한 성품을 반영하고 있다. 김영사 제공하지만 저자는 “엄선된 인물이 정성을 다해 썼을 것이고 왕이나 후손 또는 그 측근으로부터 검수도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사지왕 명문뿐 아니라 경북 포항 중성리 신라비, 영일 냉수리 신라비 등에 적힌 고(古) 신라(통일신라 이전) 시대 글씨체도 모두 어린아이가 쓴 것처럼 자유롭고 천진난만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컨대 이사지왕 명문의 기우뚱하고 들쭉날쭉한 필체는 필적학 관점에서 자연스럽고 꾸밈이 없으며 소박한 성품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중성리 신라비 역시 어떻게 새길 것인지 미리 계획하지 않고 손이 가는 대로 돌의 요철을 피해가며 즉흥적으로 써내려가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오롯이 담겨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중국의 ‘손추생등조상기(孫秋生等造像記)’는 엄정한 격식과 꾸밈을 갖춘 정서체로 적혀 있어 신라의 자유로운 글씨체와 대조를 이룬다.
저자는 이 차이를 고조선부터 신라 법흥왕 이전까지 유지된 한민족 고유의 문화적 DNA인 ‘네오테니(neoteny·어린이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한다. 네오테니란 성장해서도 어린시절의 특성을 유지, 발전시키는 것으로 자유분방하고 활력이 넘치며 호기심과 장난기가 가득한 기질 등으로 정의된다. 예컨대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끈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이런 네오테니의 문화적 속성과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미국 인류학자 리처드 퓨얼은 “지구상에서 동아시아 사람들이 가장 네오테닉하고 그중에서도 한국인들이 가장 네오테닉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조선부터 내려온 한민족의 독특한 문화 속성은 중국식 연호와 이름, 복장, 율령의 사용 등 급격한 중국화를 추진한 신라 법흥왕 때부터 일정 부분 맥이 끊겼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특히 중국 고전을 읊는 것이 필수가 된 고려시대부터는 글씨체가 중국을 따라 경직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 밖에 백범 김구의 서체와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의 글씨체가 유사하다는 분석도 흥미롭다. 두 글씨체 모두 전체적으로 정사각형을 이루면서 글씨에 힘이 넘치고 필선이 부드러우며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것. 필적학 이론으로 보면 용기가 있고 꾸밈이 없는 천진한 성품을 반영한 글씨라는 분석이다.
이 책은 이른바 ‘필적 고고학’을 개척하겠다는 포부가 담긴 흥미로운 책이다. 미국필적학회(AHAF)와 영국필적학자협회(BIG) 회원이기도 한 저자는 21년간 검사로 일하면서 사람의 내면과 글씨의 상관관계를 연구해 왔다.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서체를 비교 분석한 ‘필적은 말한다: 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2009년)을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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