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은 우뚝 선 모습이지만 측면은 걷는 모양새다. 어떻게 이런 석상을 만들었을까. 고대 아시리아인들은 사람의 얼굴에 사자나 황소의 몸통을 한 석상인 ‘라마수(lamassu)’를 만들면서 다리를 하나 더 만드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다리는 다섯 개다. 그렇지만 정면에선 두 개, 측면에서는 네 개만 보이도록 했다. 이 때문에 라마수를 정면에서 보면 두 다리로 근엄하게 서 있지만 성문을 통해 지나가면서 보면 영락없이 네 다리로 걷고 있는 모습이다.
라마수는 인류의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서 약 4000년 전 등장한 아시리아 제국 도시의 성문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현재의 이라크와 시리아 일대의 성을 지켜왔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이 지역을 장악하고 있어 실물 라마수는 현장에서 보기 어렵지만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
라마수의 가치를 알아 본 외지인들이 19세기 중반부터 이 석상을 옮겼다. 장비도 변변치 않던 시기에 무게가 최대 27톤에 달하는 거대한 석상을 수레와 배를 이용해 옮기는 것은 장정 수백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야 할 만큼 힘든 작업이었다.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독일 페르가몬박물관 등 세계적 박물관들은 라마수 실물을 전시하고 있다.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중 하나였던 님루드의 아슈르나시르팔 2세 궁전의 문을 지키던, 원래 자리를 지키던 몇 개 되지 않은 라마수가 최근 파괴됐다. IS가 쇠망치와 드릴로 수천 년 역사의 고대 유물을 한순간에 뭉개버렸다.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라마수를 빼돌려 파괴를 피하게 해준 서구인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 정도다.
IS가 라마수를 비롯한 님루드 유적과 하트라 유적, 모술 도서관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파괴한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고대유물과 문화유산 등이 우상 숭배여서 이슬람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슬람 율법 해석 권한을 가진 기관인 ‘다르 알이프타’도 IS의 율법 해석이 틀렸다고 반박했다. IS는 자신들이 믿는 신만 신이고, 다른 이들이 믿는 신은 악마로 여기는 듯하다. 자신과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그릇된 종교적 행태다.
우리 사회에서도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일들이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서울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명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독교계의 반발도 그 한 예다. 역명 제정과 관련한 행정 절차에는 당연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합리적인 이유가 아니라 ‘남의 종교’가 지역의 상징이 되면 안 된다는 속마음에서 나온 반대라면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배타감에 젖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처의 서광이 서려있다는 데서 유래된 ‘불광(佛光)’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교회와 성당이 있는 것처럼 ‘다른 생각’과 공존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곳이 우리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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