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수요일부터 나흘 동안 매일 파가니니(사진)의 바이올린 독주곡 ‘24개의 카프리스(광시곡)’를 들었습니다. ‘LG와 함께하는 제11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가 올해 바이올린 부문으로 열리고 있는데, 1차 예선 과제곡 중 ‘24개의 카프리스 중 두 곡(연주자가 임의 선택)’이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경연에 참가한 연주자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곡은 마지막 곡인 24번입니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의 온갖 어려운 기교를 이 곡에 집어넣었습니다. 형식상으로도 ‘기교 자랑’을 하기 좋게 ‘주제와 변주곡’ 형식을 택했는데, 온갖 기술적 도전이 이어지는 변주부와 달리 주제는 친근하고 외우기 쉽습니다. 한번 들으면 “아∼ 이 선율이군” 하실 겁니다. 원곡인 카프리스도 유명하지만, 후대의 많은 음악가들도 이 주제를 따다가 자기 나름대로 편곡해 새로운 작품으로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그 작곡가들의 면면도 ‘으리으리’합니다. 브람스는 이 주제에 28개의 변주를 붙인 피아노곡 ‘파가니니 변주곡’을 썼습니다. ‘피아노의 귀신’으로 불렸던 리스트도 이 주제를 사용한 ‘파가니니 대연습곡’을 남겼습니다. 라흐마니노프도 피아노와 관현악이 협연하는 ‘파가니니 광시곡’을 썼습니다. 20세기에도 블라허, 리버만, 루토스와프스키, 시마노프스키 등의 작곡 명인이 이 주제를 사용해 변주곡과 협주곡 등을 썼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나탄 밀스타인, 피아니스트 파질 사이 등도 이 주제를 변주곡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주제는 대중음악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베니 굿맨, 잉베이 말름스틴, 조 스텀프, 헬로윈 등이 이 선율을 자신의 음악에 사용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인기 음악게임에도 이 선율이 사용됐습니다. 몇 년 전 LG OLED TV 광고에도 이 선율이 쓰여 이탈리아 바이올린 같은 ‘생생한 컬러’를 강조하는 데 한몫했습니다.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강력한 유전자가 생명체를 통해 퍼져 나가는 것처럼, 마음에 쏙 들어오는 책 구절이나 매력적인 선율과 같은 강력한 ‘문화적 유전자’도 계속 복제되어 퍼져 나간다”고 말했습니다. 파가니니가 카프리스 24번에 썼던 주제는 그런 강력한 문화적 유전자로 들기 좋은 사례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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