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등 백탑파, 그들도 결국 주자학에 충실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8일 03시 00분


◇독서와 지식의 풍경/배우성 지음/440쪽·2만 원·돌베개
‘독서와 지식의…’를 쓴 배우성 교수

돌베개 제공
돌베개 제공
최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탑골에서 부는 바람’ 특별전에서 한 동영상이 눈길을 끈다.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형성한 이른바 ‘백탑파’의 멤버였던 박지원 이덕무 유득공 등이 교유하는 장면을 재현한 것이다. 이들은 양반과 중인이라는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한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밀랍으로 매화 만드는 놀이를 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용후생(利用厚生)과 북학(北學)의 정신을 공유한 이들의 학문적 교류가 더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그런데 실제로도 이들은 속 깊은 얘기를 나눈 벗이었을까. 성리학적 질서를 완전히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꿨을까. 조선 후기 지식의 유통과정을 다룬 저서 ‘독서와 지식의 풍경’은 이런 의문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정조와 실학자들의 저작을 살펴보면 이들도 다른 지식인처럼 주자성리학을 정점으로 한 사상체계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저자 배우성 서울시립대 교수(사진)의 설명이기도 하다.

―조선 실학자들도 신분의 장벽을 완전히 뛰어넘지 못한 건가.

“백탑파의 교유는 다른 지식인 커뮤니티에 비해 진보적이었지만, 사회적 장벽을 완전히 넘어선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박지원은 양반과 다른 신분층의 관계에 대해 ‘등위에 구애돼 서로 교류하면서도 감히 벗으로 사귀지는 못한다’고 썼다. 박지원 등 노론 벌열가 양반들이 중인 출신 지식인을 ‘도를 함께하는 벗’으로 여겼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들을 다만 시인으로 대우했을 뿐이다.”

―조선 후기 지성사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본 것은 아닌가.

“서양 근대화의 관점에서 당시 지성사를 보면 그렇겠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시각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본다. 이 책에서 말하려는 것은 정조를 비롯한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주자성리학을 정점으로 한 지식의 위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정조는 주자성리학 중에도 사변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사회적 실천이나 경세적 측면에 중점을 뒀다.”

―문체반정 때 정조의 행동을 보면 보수적인 학자로 비치는데….

“역사학자들은 정조를 탕평·개혁군주로 보고, 문학 전공자들은 문체반정을 거론하며 자유로운 글쓰기를 탄압했던 군주로 본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문체반정 때 양반과 중인에 대한 정조의 문책 강도가 동일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조가 양반과 서얼에게 기대한 사회적인 책임이 달랐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에서 자본주의 맹아를 찾으려는 것은 억지인가.

“역사학자들이 현재의 로망을 과거에 비춰보려는 성향이 있는데 나는 이를 반대한다. 예컨대 조선 때는 국가가 인쇄출판을 독점하다 보니 서점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책이 활발하게 유통되지 못했다. 근대 서양과 비교하면 경직된 출판문화에 대한 아쉬움이 나올 수 있다. 책은 민간을 통해 다양하게 인쇄돼 불특정 다수에게 유통돼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당시의 책의 사회적 의미를 제대로 설명해줄 수 없다. 정조가 ‘고금도서집성’과 같은 서책의 열람 범위를 제한한 데서 알 수 있듯 조선 후기 지식의 탐구는 주자성리학을 정점으로 한 정학(正學)의 부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독서와 지식의 풍경#백탑파#주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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