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히라노 게이치로 지음/이영미 옮김/600쪽·1만5800원·문학동네
영웅 만들기와 대통령 선거… 내적갈등까지 촘촘히 엮은 장편
2033년 11월 6일 우주인 6명을 태운 미국항공우주국(NASA) 우주선 ‘던’이 인류 최초로 유인 화성 탐사에 성공한다. 우주선에는 일본 도쿄 대지진으로 어린 아들 ‘태양’을 잃고 우주인이 된 일본인 외과의사 사노 아스토와 집권당인 공화당 부통령 후보의 딸인 생물학자 릴리언 레인도 탔다. 그들이 귀환하자 공화당은 ‘던’의 업적이 미국의 긍지이자 애국적 헌신이라며 승무원 영웅 만들기에 나선다.
그런데 얼마 후 레인이 선내에서 임신 후 사노의 손에 임신 중절 수술을 받았다는 추문이 나온다. 여기에 인간에게 치명적인 신종 말라리아를 미군이 만드는 데 레인이 관계됐단 의혹까지 나오면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형 스캔들로 커진다. 저자는 잘 짜인 거대한 스토리 속에 등장인물들의 내적 갈등과 철학적 고민을 촘촘하게 녹여 600쪽 분량의 장편을 술술 읽히게끔 썼다.
저자는 후기에서 소설의 주요 주제가 ‘분인(分人)’이라고 밝힌다. 사노는 말한다. “인간의 몸은 하나뿐이니 그걸 나눌 방법은 없지만, 실제로 우리 자아는 상대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어. …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바뀔 수밖에 없지. 이런 현상을 개인의 분인화(dividualize)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그 각각의 내가 분인이지. 곧 개인은 분인의 집합인 셈이고.”
영웅 대접을 받는 사노는 소설 첫머리에서 정체 모를 여성에게 “정직하지 않았어요”란 비아냥거림을 듣는다. 결말부에선 주변의 만류에도 영웅적 인간이라는 미명을 버리고 중대한 실책, 부끄러운 행동을 털어놓는다. 그는 모든 것을 잃을 각오로 자신의 분인 중에 정직을 택했기에 다시 신뢰를 얻는다. 기계문명이 극한까지 발달한 미래를 그저 어둡게만 그리는 ‘근미래 디스토피아’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작가의 충실한 취재와 상상력으로 그려낸 미래도 흥미롭다. 방범 카메라 영상이 전부 인터넷에 연결돼 누구나 특정 얼굴을 검색하면 얼굴이 찍힌 영상을 모조리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카메라를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새로운 성형기술로 얼굴을 수시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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